"그의 커브를 치는 건 포크로 커피를 떠먹는 기분이었다."
타격 천재들이 모인 메이저리그에서도 알고도 못 치는 공이 있었다. 어디로 날아갈 지 몰라 '마구'라 불리는 너클볼이 아니다. 야구 종목이 생긴 뒤 가장 먼저 개발된 변화구, 바로 커브였다. 느리게 날아오다 폭포수처럼 뚝 떨어지는 커브는 타격 기계들조차 배트 중심에 맞히지 못했다.
샌디 쿠팩스(78)의 커브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직구를 던질 때와 투구폼이 달라 타자들은 커브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지만, 안타를 치는 건 꿈 같은 일이었다. 포크의 틈새로 커피가 빠져 나가 듯 쿠팩스가 던진 커브는 타자들의 방망이를 비껴갔다. '신이 내린 왼팔'이란 별명은 팬들이 쿠팩스에게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괴물' 류현진(26ㆍLA 다저스)이 커브의 달인 쿠팩스를 만났다. 쿠팩스는 18일(이하 한국시간) 다저스의 스프링캠프가 차려진 미국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의 캐멀백 랜치 스타디움을 찾았다. 여든이 가까운 나이에도 흰색 스웨터와 검은색 청바지로 멋을 냈고, 류현진과 짧은 시간 대화를 나눴다.
쿠팩스는 마크 월터 다저스 구단주의 특별 고문 자격으로 투수에게 많은 조언을 해줄 예정이다. 2주간 스프링캠프에 머물면서 커브를 던지는 노하우도 전수할 계획이다. 쿠팩스는 "오늘 처음 류현진과 인사를 나눴는데 실제 보니 덩치가 굉장히 컸다"면서 "아직 던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릭 허니컷 투수코치가 모든 지도를 책임질 것이지만 나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르치겠다"고 했다.
류현진 입장에서는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 쿠팩스는 1955년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데뷔, 1966년 은퇴할 때까지 12년을 다저스에서만 뛰었다. '푸른 피'의 상징으로서 통산 165승87패, 평균자책점 2.76을 남겼다. 특히 폭포수 커브를 앞세워 2,324.1이닝 동안 2,396개의 삼진을 잡았고 1963년(25승), 1965년(26승), 1966년(27승) 등 세 차례나 사이영상을 받았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A급 투수들 부럽지 않은 서클 체인지업을 갖고 있다. 알고도 못 친다는 평가는 이미 국제 대회에서도 수 차례 들었다. 하지만 다저스에 입단한 뒤 미끄러운 공에 적응하지 못한 채 커브 제구에 애를 먹었다. 위력적인 커브를 갖춘다면 시속 150㎞를 넘나드는 직구와 체인지업, 슬라이더와 함께 타자를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다.
류현진은 그 동안 '멘토'들의 덕을 많이 봤다. 한국산 괴물을 만든 건 뛰어난 신체조건과 기량에다 환경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다. 한화 시절 구대성과 송진우, 정민철 등은 갓 프로에 뛰어든 류현진에게 많은 것을 전수해줬다. 체인지업은 구대성이, 슬라이더와 경기 운영 능력은 송진우와 정민철이 가다듬어줬다.
류현진은 이날 쿠팩스를 만난 뒤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한국에도 송진우 코치님이 있다"고만 했다. 하지만 다저스의 최고 스타를 만난 괴물이 '포크로 떠먹는 기분'의 커브까지 장착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달인은 달인을 낳고 장인은 장인을 만드는 법이다.
한편 신시내티 레즈맨으로 변신한 '호타준족' 추신수(31)도 2013년 도약을 위한 힘찬 기지개를 하고 있다. 추신수는 지난 15일부터 팀의 스프링캠프가 열리고 있는 애리조나주 굿이어의 굿이어볼파크에서 합동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17일엔 첫 타격 훈련을 했는데 잇달아 외야로 멀리 뻗어가는 총알 타구를 날려 더스티 베이커 감독을 흡족하게 했다.
추신수는 올 시즌 1번 타자 중견수를 맡을 예정이다. 공수에서 모두 팀의 핵심이다. 클리블랜드에서는 주로 우익수로 나서 아직은 낯선 포지션이지만 워낙 수비 센스가 뛰어나 큰 걱정은 없다. 추신수는 "신시내티의 빨간 유니폼은 어릴 때부터 동경했다. 타석에서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수비에서는 펜스 플레이를 잘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