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 12일 1심에서 징역 4년에 벌금 2,340억원이 선고된 '선박왕' 권혁(63) 시도상선 회장이 2년2개월만 추가로 수감 생활을 하면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법조계에서는 형법 개정 등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7일 법원 등에 따르면 권 회장이 벌금을 내지 않고 노역장에 유치될 경우 환산 벌금액이 하루 3억원에 달한다. 현행 형법 69조가 '벌금을 납입하지 않은 경우 1일 이상 3년 이하의 기간을 노역장에 유치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3년을 넘지 않는 선에서 벌금 2,340억원을 유치 일수로 나누다 보니 생겨나는 일이다. 권 회장처럼 높은 벌금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법원은 통상 벌금이 1억원 전후면 하루 10만원, 500만원 이하면 하루 1만원을 기준으로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선고해 왔다.
법원도 권 회장의 하루 노역장 유치 환산 벌금액이 3억원에 달하는 것은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다. 한 법원 관계자는 "법을 바꾸지 않는 이상 이렇게 선고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일선 법관들은 벌금 미납시 노역장에 유치하는 기간의 상한을 늘리거나, 벌금액에 따라 유치 기간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의 경우 미국은 벌금 지불 의무 기간을 20년으로 설정하고 있고, 프랑스는 벌금액이 많을수록 노역장 유치 기간을 늘리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재경 지법의 한 형사단독 판사는 "형법이 범죄 규모가 날로 커지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이 같은 문제가 생긴다"며 "사회 변화상을 입법으로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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