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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게 노래한 일상의 기쁨… 천진한 시세계 오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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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게 노래한 일상의 기쁨… 천진한 시세계 오롯이

입력
2013.02.17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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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마지막 기인(奇人)'으로 불린 시인 천상병(1930~1993)의 미발표 시 8편이 발굴됐다. 올해로 10년째 천상병예술제를 기획, 감독하는 극단 즐거운사람들 김병호(50) 대표가 보관하고 있던 작품으로 김 대표는 4월 천상병예술제를 앞두고 관련 자료를 최근 공개했다. 김 대표는 "올해 천상병 20주기를 맞았지만, 문단에서도 잊혀졌다"며 "천상병 시인의 삶이 일반에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공개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에 공개된 작품은 시 '비'(六) '看板(간판) 2' '내집 2'등으로 생전 천 시인이 살았던 수락산 일대를 배경으로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담백한 시어로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茶房(다방)안이 고요하고 音樂(음악)만이 들린다'로 시작하는 '비'는 '아폴로 뮤직홀'이란 다방의 메모지에 쓰여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1970년대 중반, 천 시인이 결혼 후 생활에 안정을 되찾으며 쓴 작품으로 추정된다.

고영직 문학평론가는 "천상병 시인은 비, 간판, 내집 등을 제목으로 1972~1974년 연작시로 발표한 바 있다. 새로 발굴된 작품은 이 시기 쓰고 발표하지 않은 작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 '비'에서 '나이가 四二(42)세니 이제는 靑春(청춘)은 가고 없고'란 시구는 이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천상병 시인은 1974년 문예지 가을호에 '비 7' 등 비 연작시 5편을, 이듬해 11월호에 시 '비'를 발표한 바 있다. 1974년 출간한 시집 에는 '내집'이란 제목의 시가 실렸다.

그의 작품은 간결하고 압축된 표현을 통해 우주의 근원과 피안으로서의 죽음, 비참한 인생의 현실 등을 담는다. 장식적 수사나 지적인 조작을 배제하고 현실을 초탈한 삶의 자세를 담백하게 표현했다. 고영직 씨는 "새로 공개된 작품은 소박하고 천진한 천상병 특유의 시 의식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날 김 대표는 천 시인이 목순옥 여사와 함께 찍은 사진 등 8점도 공개했다. 1980년대 중후반 찍은 사진들이다. 김 대표는 "슬하에 자녀가 없어 천상병 시인의 유품을 지난해부터 천상병기념사업회가 보관하고 있다"며 "국내 문화예술인에 관한 정부차원의 지원과 아카이브 구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1930년 일본 효고현에서 태어난 천상병 시인은 서울대를 중퇴하고 1951년 평론에 이어 1952년 에 시 '갈매기'로 등단했다. 하지만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되며 6개월여 옥고를 치른 후 별세할 때까지 다른 직업 없이 시인으로 살았다. 중앙정보부에서 '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시 '그 날은 새') 전기고문을 세 차례 받은 그는 후유증으로 이후 정신병원 신세를 졌고, 아이도 나을 수 없는 몸이 됐다.

1970년 겨울 갑자기 종적을 감춘 천 시인이 길에서 쓰러져 요절했다고 여긴 문단 지인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71년 유고 시집 를 출간했다. 그러나 얼마 후 행려병자로 오인돼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된 소식이 전해지면서 천 시인은 살아있으면서 첫 유고 시집을 낸 유일무이한 시인이 된다.

1972년 친구 목순복의 여동생인 목순옥과 결혼했다. 시선집으로 , 등을 펴낸 그는 1988년 만성 간경화증으로 춘천의료원에 입원한 후 1993년 세상을 떴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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