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인류가 소행성 관측을 시작한 이래 지구 가장 가까이(최근거리 지표면에서 2만7,700km)로 40m급 소행성이 지나갔다. 이 소행성 '2012 DA14'는 16일 오전 4시24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동쪽 인도양 상공을 지나 10분 뒤 서울에서 3만300km 떨어진 상공을 총알보다 10배 빠른 속도(초당 7.8km)로 스쳐갔다. 이보다 불과 몇 시간 전에는 러시아 우랄산맥 인근에 지름 15m의 대형 운석이 떨어져 1,000여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이 두 사건이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밝혔으나 이례적인 우주현상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스쳐간 소행성과 1년 간 숨바꼭질
24601. 영화와 소설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주인공 장발장의 죄수 번호다. 그런데 우주공간에도 이 번호로 불리는 존재가 있다. 바로 소행성 '24601 발장(Valjean)'이다. 태양 주위를 도는 천체 중 행성보다 작고 유성체보다 큰 천체를 소행성이라고 부른다. 2012 DA14는 지난해 2월 말 스페인 마요르카 천문대에서 처음 발견됐다. 지름 약 45m로 농구장 크기의 2배 정도 되는 이 소행성은 천체치고 크기가 작은 탓에 곧 과학자들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해를 넘긴 숨바꼭질 끝에 올 1월 초 칠레 라스캄파나스 천문대가 가까스로 다시 찾아내 발견 시기를 뜻하는 2012 DA14란 이름이 붙었다.
2012 DA14는 이번 지구와의 조우로 큰 변화를 겪고 있다. 16일 전까지만 해도 이 소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타원형 궤도의 대부분이 지구의 공전궤도 바깥에 있었다(아폴로족). 궤도의 긴 지름은 지구에서 태양 사이의 평균 거리(1억5,000만km)와 비슷하다. 그러나 16일 이후부턴 중력의 영향을 받으면서 궤도의 대부분이 지구 공전궤도 안쪽으로 들어오고 있다(아텐족).
24601 발장의 처음 이름은 '1971 UW'였다. 1971년 10월 말 처음 공식 관측됐다는 의미다. 크기와 궤도를 비롯한 여러 특성이 밝혀진 이 소행성에 24601이라는 고유번호가 붙자 첫 관측자로서 명명권을 갖게 된 독일 함부르크-베르게도르프 천문대의 한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천문학자가 '레미제라블'의 주인공처럼 발장이라고 부르기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대부분의 소행성은 이처럼 대중에게 존경이나 사랑을 받은 유명인의 이름을 따 명명됐다. 먼로, 프레슬리, 비틀즈, 모차르트, 베토벤 소행성도 있다.
지름이 1km보다 큰 건 860여 개
한국천문연구원은 "2012 DA14만한 비교적 큰 소행성이 이처럼 지구 가까이 지나간 건 1998년 이후 처음"이라고 밝혔다. 2011년 '2011 MD'가 지표면에서 1만2,000km 상공까지 접근했지만, 크기가 2014 DA14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2008년 미국 애리조나대 연구팀이 발견한 '2008 TC3'는 지구로 떨어지는 지점이 아프리카 수단이라는 것까지 정확히 계산되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수단의 한 사막에서 낙하한 소행성 조각을 찾아냈다. 인류가 소행성을 관측하고 충돌을 예보하고 잔해까지 찾아낸 첫 사례다. 그러나 2008 TC3는 지름이 5m도 안 됐다. 어쩌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여러 소행성이 지구를 더 가까이 스쳐갔을 지 모를 일이다. 소행성은 다른 천체에 비해 워낙 작고 어두운 데다 빨리 움직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조차도 포착하기 쉽지 않다.
1998년 미국은 지구 궤도를 통과하는 지름 1km 이상인 모든 물체를 찾아 목록화한다는 이른바 우주방위목표를 세웠다. 덕분에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과학자들이 소행성을 적극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 뒤 불과 20년도 안된 지금까지 소행성 9,440여 개가 발견됐다. 궤도상에서 태양과 가장 가까운 지점까지의 거리가 지구와 태양 간 평균 거리보다 가까운 것(근지구소행성)만 이만큼이다. 이 중 지름이 1km보다 큰 건 860여 개로 추산된다. 화성과 목성 사이 많은 소행성이 몰려 있는 이른바 '소행성대'에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소행성이 서로 부딪히며 또 다른 소행성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40m급 충돌 확률은 1,200년에 한번
근지구소행성은 태양 주위를 공전하며 지구 궤도와 만나거나 지구 가까이 접근한다. 지구나 인공위성 등과 충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과거 지구로 떨어졌던 운석을 분석해보니 특정 소행성과 조성이 일치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최근 속속 발표되고 있다. 운석의 모체가 소행성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충돌까지는 아니어도 상대적으로 큰 소행성이 지구를 가까이 지나면서 소규모 지각변동을 일으키거나 조수간만의 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과학자들이 소행성들의 궤도를 일일이 추적하려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40m급 근지구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확률은 1,200년에 한번 꼴로 계산된다. 이번에는 다행히 지구에 영향이 없었다. 2012 DA14가 나로과학위성의 고도 약 1,500km와 천리안위성의 고도 약 3만6,000km 사이 거의 빈 공간으로 지나갔기 때문이다. 15일 러시아 우랄산맥 인근에 떨어진 운석이 2012 DA14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이라는 추측이 제기됐지만, NASA는 궤도의 방향 등으로 보아 러시아 운석과 2012 DA14는 관련이 없다고 발표했다. 운석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한 반면, 소행성은 정반대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 문홍규 책임연구원은 "앞으로 2012 DA14가 구체적으로 어떤 궤도를 그리며 이동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지구와 좀더 가까워진 만큼 미래에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특히 주성분이 금속이 아닌 암석으로 이뤄진 소행성은 중력에 의해 대기권으로 끌려 들어와 떨어지는 동안 대기와의 마찰로 타면서 큰 폭발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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