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 유산분쟁 1심에서 완패했던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사진)씨가 동생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항소를 결정했다. 이로써 삼성가 형제간 유산분쟁은 다시 점화됐고, '승산 없는 게임'이란 법조계의 시각에도 불구하고 이맹희씨가 소송을 다시 이어가기로 한 이유를 놓고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이맹희씨측 소송대리인인 법무법인 화우는 15일 서울중앙지법에 항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화우측은 1심 재판부가 ▦이건희 회장이 차명보유 중이던 삼성생명 주식 가운데 무상증자로 늘어난 부분을 상속재산으로 인정하지 않은 점 ▦삼성 측에서 차명 주식의 유무상 증자분 및 배당금과 의결권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배타적으로 점유 관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점에 항소의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32부는 지난 1일 이건희 회장이 상속받은 삼성생명 주식 50만주 가운데 원고들의 상속분은 10년에 제척기간(법적 효력이 발생하는 기간)이 지났고, 이 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했던 삼성생명 주식을 통해 수령한 배당금은 상속재산이 아니라며 일부 각하, 일부 기각하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건희 회장이 사실상 완승한 1심 판결이 나오자 법조계와 재계에선 이맹희씨가 항소하더라도 실익이 없을 것으로 봤다. 실제로 이맹희씨도 억울하더라도 1심 판결을 수용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항소시한 마지막 날 이맹희씨가 소장을 내자 재계에선 의외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CJ측에서도 당혹스럽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CJ에 따르면 이재현 회장이 전날(14일) 중국에 머물고 있는 아버지 이맹희씨를 직접 찾아가 항소를 만류했다는 것. CJ 관계자는 "재벌들이 재산 싸움을 벌이는 모양새가 더 이상 좋게 보일 수 없어 이재현 회장이 부친을 적극 만류한 것으로 안다. 이틀 전만해도 항소 포기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항소장을 내 당황스럽기는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삼성도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공식적으론 "개인간 소송인 만큼 그룹에선 할 말이 없다"며 입장표명을 거부했지만, 또다시 유산분쟁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 몹시 부담스러운 눈치다. 한 관계자는 "1심 판결로 볼 때 이맹희씨 주장은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 아닌가"라며 "그런데도 항소를 한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삼성 내에선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설령 2심에서 다시 패소하더라도, 분쟁을 이어감으로써 이건희 회장과 삼성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려는 것이 이맹희씨쪽 의도라는 것이다. 아울러 '항소를 말렸다'는 CJ측 주장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한편 항소에 따른 막대한 인지대도 관심을 끈다. 소송규모가 4조849억원에 달했던 1심의 경우 인지대만 127억원이었고, 항소를 하면 50%가 더해져 인지대만 190억원에 달한다. 재계에선 당초 "막대한 인지대 때문에라도 항소는 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이맹희씨는 항소심에서 소송가액을 96억5,000만원으로 크게 낮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화우 관계자는 소송가액을 낮춘 이유에 대해 "4조원 규모의 1심 판결 전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라 승산이 있는 부분만 집중 공략하려는 것"이라며 "인지대도 당연히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추가로 낼 인지대는 4,600여 만원에 불과해 이맹희씨의 항소결정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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