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면식 없는 친인척 자료에 큰딸 대입 답안지까지 요구묻지마 의혹에 짜증났지만 청문회 가치 부정할 수 없어"지도자라면 최소한 이렇게…" 청문회는 후세 향한 메시지도덕성 검증 의미 차츰 줄고 정책적인 면이 중요해질 것
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는 인사청문회를 사실상 두 번 겪었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그는 2006년 7월 교육부총리에 내정돼 국회 청문회를 거쳐 교육부총리에 취임했다. 하지만 취임 직후 논문 표절 의혹, 연구실적 이중보고 논란 등이 연이어 불거지자 그는 청문회를 자청했다. 청문회에서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해명한 그는 취임 13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 그는 당시 타면자건(唾面自乾ㆍ남이 얼굴에 침을 뱉으면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6년여가 흐른 지금 그의 얼굴에 묻은 침은 얼마나 말랐을까.
설을 앞두고 서울 명동의 한 찻집에서 90분간 진행된 인터뷰 도중 김 교수는 자신이 표절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다양한 논리와 근거로 네 차례 반복했다. 청문회 과정에서 가족이 받은 상처가 너무 크다며 특히 딸들에게 한없이 미안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청문회는 과거를 따지지만 결국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청문회를 보고 자란 세대는 더 깨끗할 것이라고, 과도기에 나타나는 문제를 이유로 청문회의 가치를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청문회를 두 번 했다. 청문회에 섰을 때 어땠나.
"다른 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는데 제 경우는 굉장히 성가시고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것들이 있었다. 국회의원들이 직무능력에 대한 것이나 도덕성을 검증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면 당연히 제출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도가 지나친 경우는 정말 짜증이 난다. 예를 들면 지난 4년간의 골프장 출입기록과 동반자 명단 그리고 경비 출처, 4촌 이내 친인척의 해외 여행 기록 및 경비 출처를 내라고 했다. 내 사촌이 29명인데 반 가까이는 30년 동안 거의 못 본 사람들이다. 나는 애들 혼사를 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없었지만 사돈의 성적표를 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정말 내가 꺼내 놓기 싫은 것들이 있다. 아까 악수도 했지만 손가락이 하나 절단되고 없다. 굳이 감추진 않지만 누구에게 보이긴 싫은데 그런 것을 다 증명해야 했다. (그는 청문회에서 방위병 근무 경력이 논란이 되자 어린 시절 사고로 손가락을 잃었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에 관한 것들은 정말 뭐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실제로 국회의원들이 아이들 학교까지 가서 난장판을 만들었다. 큰 아이의 대학 입학시험 답안지를 봐야 되겠다고 했다. 총장이 거절했는데 내가 전화해서 보여드리라고 했다. 하지만 의원들과 질문을 주고 받는 것에는 불만을 느끼지 않았다."
-과거의 삶을 돌아봤을 때 청문회 통과를 자신했나.
"우리 청문회가 팩트를 내놓아도 논란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험난한 과정을 거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총리 후보에도 올랐고 청와대에서 사전 검증을 샅샅이 했기 때문에 충분히 치고 나갈 만하다고 생각했다. 첫 청문회는 아이들 학교 문제가 이슈가 될지는 몰랐지만 예상한 정도였다. 그런데 통과한 후에 표절이라고 하니까 기가 막혔다. 결백을 밝히기 위해 사표 낼 각오를 하고 두 번째 청문회를 요청했다."
-결백하다면 왜 사퇴를 결심했나
"두 번째 청문회를 끝내고 국회를 나오는데 걸려온 첫 전화가 (노무현) 대통령 전화였다. 대통령께서 '완승이야 완승' 이러시더니 '그런데 국회 기류를 이겨낼 수 있겠나'라고 말씀하셨다. 청문회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대통령과 했다. 밤새 생각해 봤는데 내가 물러나야 한다고 말씀 드렸다. 대통령이 대답을 안 하시더니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전부 자르겠다는 것 아니냐'고 했다. 식사를 마치지도 않고 사표 내러 간다고 말하고 나왔다. 사표를 내지 않으면 해임 건의안이 들어오게 돼 있고 또 통과되게 돼 있었다. 단순히 김병준이라는 개인이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의 대리인이라는 정치적 의미가 컸기 때문이다. 해임 건의가 되면 청와대와 국회의 관계가 극단적으로 갈 것이기 때문에 내가 사표를 내는 게 맞았다. 또 정권에 부정적인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이길 수가 없었다."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
"나는 괜찮다. 정책실장도 하고 권력을 가졌던 사람이고 권력을 잘못 운영해서 민심을 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받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학교 안에 소문이 나고 언론에 어느 학교 무슨 과라는 게 보도되면서 다 알려졌다. 그때 큰 딸은 방송국 인턴을 하고 있었는데 결국 그만두었다. 아버지 얼굴이 온 TV에 나오니까 괴로워서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둘째 딸도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외고에 편입한 것을 의원들이 뒤지니까 한동안 동창회에 나가지 못했다. 두 번째 청문회까지 가는 도중에 한번은 잠이 오지 않아서 거실에 나갔더니 아이들과 집사람도 못 자고 있더라. 같이 방에 앉아서 밤을 샜다. 딸들한테 아빠가 표절을 했다면 이 세상에 살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문회 과정에서 아쉬운 일은 없었나
"누가 그러더라 당신이 서울대를 안 나와서라고. 우리 사회의 주류가 아니니까. (그는 영남대 정치학과를 나와 미국 델라웨어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말 학계 주류 인사들이 너무도 뻔한 논문 문제를 해명해주려 들지 않더라. 딱 몇 분이 나섰다. 나중에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실장을 한 정정길 당시 울산대 총장이 흥분해서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냐며 신문에 칼럼을 쓰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내가 '선배님이 이거 해결 못한다'고 쓰지 말라고 했다. 조직적인 힘에는 속수무책이다. 국회와 언론이 움직이는데 어떻게 그걸 감당할 수 있겠나. 당시 민교협(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이 표절한 부총리는 물러나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교수들이라면 언론만 볼 게 아니라 논문을 직접 보고 판단해야 하는 것 아닌가. 민교협에 성명을 낸 교수들이 논문을 봤다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 섭섭한 게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것이다."
-청문회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우선 가족들이 더 단단해졌다. 가족간 유대감이나 딸들과의 관계는 당시가 최고였다. 또 좋은 것은 세상에 달관하게 됐다는 것이다. 운명이라는 게 있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까지 내가 옳으면 옳고, 옳은 사람이 잘 되는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옳다고 당연히 보상받는 것이 아니고 인생을 살다 보면 억울하지만 물러설 때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아이들한테 상처가 너무 컸다. 지금도 그것은 아이들한테 한없이 미안하다. 집사람은 아직도 억울한 게 다 안 풀렸다. 내가 거꾸러져 폐인이 되고 아무것도 못하게 됐다면 한이 맺혔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멀쩡히 활동하고 있고 동료와 제자들도 찾아오고 하니까 많이 나아졌다."
-이후 청문회에서 낙마한 사람들을 보면 어땠나
"첫 번째로, 많이 당하신 분들 보면 인간적으로 안됐다. 그 고통을 아니까. 두 번째는 스스로 판단해서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안 하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세상에 하는 것이 있으면 안 하는 것도 있어야 한다. 아니다 싶으면 미리 고사를 하는 것이 맞다. 우리 사회에 장관이나 총리보다 중요한 일이 많다. 자기를 잘 판단해서 공직의 권위에 상처를 줄 정도면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 다른 일을 하면 된다. 이번에 김용준 총리 지명자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고사를 했어야지 왜 그걸 받아 들였을까. 하지만 명백하지 않은 것이나 명분이 있는 것은 청문회에서 싸워야 한다. 당당하게 대답하면 된다. 비굴해질 이유가 없다. 청문회에서 주눅이 드는 피청문자들 때문에 의원들이 취조하듯이 하는 것이다."
-청문회를 겪은 입장에서 개선점?
"우선 국회의원들이 격을 지켜줬으면 좋겠다. 정치적 목적으로 덤비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민주당은 다 나쁘다고 하고 새누리당은 다 좋다고 할 수 있나. 법관의 경우 판결 이력에 대해 정당별로 의견이 갈릴 수 있지만 도덕성이나 직무에 대한 기준은 객관적이지 않나. 이런 것은 당리당략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또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확인을 해야 한다. 어떻게 언론이 얘기했다고 국회의원이 그대로 따라가나. 언론은 조사 권한이 없지만 국회의원은 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 있고 조사를 할 수 있고 질문도 할 수 있다. 그러면 팩트가 어떤지를 제대로 알아봐야 한다. 반박을 하면 국회를 우습게 본다고 하는데 국회의원들이 우습게 보이도록 행동하는 것이다."
-청문회 회의론도 나오는데 청문회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청문회는 결국 미래적 의미가 크다. 청문회에서는 과거와 현재에 대한 질문을 하지만 미래를 위한 것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지도자가 되겠다면 최소한 이렇게는 살아 달라는 것이다. 그 가치는 부정할 수 없다. 도덕성이든 정책적 역량이든 반드시 청문회에서 검증을 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생긴다. 청문회가 좋은 무대가 돼서 교훈적 의미가 후세들에게 잘 전달돼야 한다. 청문회가 공직자나 학자한테도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이제 청문회도 조금씩 변할 것이다. 신상문제를 파고드는 것은 줄어들고 정책적인 면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회계나 부동산 부분 등이 많이 투명화돼서 도덕적인 문제는 세대가 내려갈수록 나아질 것이다. 우리가 워낙 진흙탕을 지나야 하는 시대를 살았고 지금은 과도기니까 사람을 구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사생활은 비공개로 검증하자는 주장도 있는데
"도덕성 부분 비공개가 한국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도덕성이 중요하다. 능력과 도덕성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유능한 인재를 찾는데 제한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아니고 국가는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 사회 전체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생각하면 도덕성을 따져야 한다. 다만 어느 정도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어떤 자료를 요청하고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불문이든 성문이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또 과거 관행이라도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나도 논문 중복 게재가 관행이었지만 사과했다. 문제는 그것이 과연 장관을 못하게 할 정도냐는 것이다. 임명권자와 국회의원들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이 판단할 수밖에 없다."
-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할 말이 많다. 언론은 속보가 굉장히 중요하고 특종도 중요하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격에 대한 문제인데 사실 확인에 있어서 좀 더 엄격하면 좋겠다. 칭찬하는 것은 사람들 머리에 남지 않지만 부정적인 것은 한번 들어가면 지워지지 않는다. 부정적인 기사로 이슈화되면 명예훼손이고 정정보도고 골백번 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법률적으로는 어떻게 할 수 있지만 세상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절대 빠져나가지 않는다.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사실 확인을 철저히 해주면 좋겠다."
김 교수는 그의 연구비 이중 수령 등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 결론을 내린 사실을 보도한 2007년 2월 한국일보 기사를 보고는 대뜸 게재 일자를 확인하며 반색했다. 그는 "우리 집 사람이 이 기사 보면 좋아하겠네"라고 말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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