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교과서 수정 권한을 명시한 초ㆍ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돼 논란을 빚은 가운데(본보 1월 22일자 1면) 장관의 수정명령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15일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교과부의 수정명령이 적법하다는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표현상의 잘못이나 기술적 사항 또는 객관적 오류를 바로잡는 정도를 넘어서 이미 검정을 거친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경우에는 새로운 검정 절차를 취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검정 절차상의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에 준하는 결정을 거쳐야 한다”라고 판단했다. 심의절차를 다시 거치지 않고 장관이 교과서를 수정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을 내 “이번 판결은 국가권력의 힘과 교과부 장관의 주관적인 역사관으로 교육 내용을 흔들지 말라는 선언”이라며 “교과부 장관의 자의적인 수정명령권과 감수권은 철회돼야 하고, 나아가 교과서 검인정 과정이 국가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지난달 교과부가 입법예고한 초ㆍ중등교육법 개정안도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은 이날 논평을 내고 “이번 판결로 정부가 교과서 내용을 통제하려는 행위가 부당함을 확인했다”라며 “정부 스스로 입법예고안을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교과부는 2008년 장관의 교과서 수정권을 명시한 시행령을 근거로 금성출판사에 수정명령을 내렸다가 논란이 되자 수정권한을 법률로 명시하기 위해 법 개정을 추진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파기환송심 결과에 따라 적법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성출판사의 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저자들은 교과부가 보수 단체의 요구대로 29개 항목을 수정하도록 명령한 것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 “수정은 실질적으로 검정과 같으므로 교과용 도서심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한 1심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2심은 “수정은 검정이나 개편과는 개념적으로 구분되고, 관계규정상 수정명령은 검정 절차와는 달리 심의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지 않고 있다”며 교과부의 손을 들어줬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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