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으면서부터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생각한다. 노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말이다. 탑골 공원이 통제를 시작하면서 노인들이 주로 소일하는 공간은 종묘 앞 광장이 되었다. 휴일 오후 그곳에 나가본다. 추위 때문에 으레 벌어지는 바둑판과 장기판은 뜸하지만 삼삼오오 모여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떤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 이야기, 부동산 이야기 등등. 한쪽엔 노인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이도 있다. 수동 카메라를 든 그 이 앞에 앉아서 포즈를 취하는 노인의 표정은 한결같이 결연하다. 삼엄한 무표정이랄까. 무슨 사진이길래 하는 순간, 탁 무릎을 친다. 그들이 찍는 사진은 영정에 쓸 사진이다. 그들은 어쨌건 죽음과 가까운 자들이라는 것을 영정 사진을 찍는 풍경이 말해준다. 노인은 죽음을 의식하는 자들이다. 자신의 영정 사진을 미리 찍어두는 노인의 심정은 어떨까.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이 계절의 바람과 햇볕은 어떻게 다가갈까. 노인을 사회의 소수자, 마이너리티로 간주하기 전에 우리는 반드시 이렇게 물어야 한다. 그들이 준비하는 죽음의 고독이 가지고 있는 품위에 대해 우리는 도대체 얼마만큼이나 알 수 있느냐고. 그 품위를 이해하는 일이 경로당의 연료비를 월 3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올리고, 고속전철 요금을 30퍼센트 할인해주는 것보다도 노인들을 더 위하는 일이 아닐까. 아니 언젠가는 노인이 될 우리 자신에게도 말이다.
김도언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