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 아니 대부분의 서울 지역의 구청장님! 도서관도 이익을 남겨야 한다고요? 죄송합니다. 오늘날을 대표하는 고사성어가 '후안무치'(厚顔無恥)인데, 구청장님만을 상대로 편지를 올리게 되어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공자님인지 누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지요. "다른 사람의 허물에 가해지는 채찍을 보고 내 허물의 아픔을 더 크게 느끼노라." 그러니 구청장님, 이 편지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허물을 깨닫게 된다면 오히려 행복하시지 않을까요?
최근 몇몇 동작구민들께서 서명 작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세 개의 신축 도서관을 짓기 위해, 기존 도서관의 도서 구입 예산을 절반 이하로 삭감하고, 문화 관련 예산은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수준(연간 50만원 이하라지요?)으로 삭감하며, 기존 사서들을 다른 곳으로 전보하는 대신 그 자리에 사서와는 관련 없는 행정직들을 배치하기로 한 구의 결정에 반발해서라는군요.
저는 일개 '출판쟁이'이니 혹시라도 제가 만든 책을 팔아먹기 위해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닐까 오해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개의치 않겠습니다. 저라는 인간은 본래 그렇지만, 구민의 공복을 자처하시는 구청장님이 구민들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하는 수모는 겪지 않으시길 바라니까요.
도서관은 인류 문명의 보관-전승-창조가 이루어지는 지성의 전당입니다. 그런 까닭에 미국의 컴퓨터 황제라는 빌 뭐라던가 하는 친구를 비롯해 수많은 창조자, 지도자, 지성인들이 도서관을 안방 삼아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도서관을 지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그런데 과연 무엇을 도서관이라고 할까요? '00도서관', '00주민문화센터'라는 멋진 간판이 붙어 있는 콘크리트 골조가 도서관일까요? 아니, 몇 권의 베스트셀러를 비치하고 이를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누군가가 앉아 대여해 주는 '도서대여점'이 도서관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문화행사와 강연을 열면서 공익성을 간판으로 건 채 수강료를 받아 수익을 올리는 곳일까요?
구청장님! 도서관은 도서관을 세운 주체, 즉 나라나 학교,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자신들이 만든 책을 독자들에게 무료로 열람, 대여하도록 장려할 뿐 아니라 틈만 나면 스스로 나서 도서관의 효과적인 활용을 위해 애쓰는 출판인들의 노력이 가미된 꿈의 공간입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어떤 장사치가 자신들이 만든 제품을 무료로 대여해 주고 사용토록 하는 것을 보고 반발하기는커녕 한없이 기뻐할까요? 그건 오직 출판인밖에 없습니다. 책은 라면이나 정수기, 아파트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세상 모든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을 소비자(消費者-사라질 소, 소비할 비, 사람 자), 즉 돈 주고 사서 써서 없애버리는 사람이라고 부르지만 책을 구입하는 사람은 절대 소비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독자(讀者-읽을 독, 사람 자)입니다.
그런데 어찌 눈에 보이는 콘크리트 건물을 짓기 위해 당연히 도서관의 주인이 되어야 할 도서 구입 예산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습니까? 어찌 도서관에 사서 대신 행정공무원을 배치할 수 있단 말입니까? 어찌 도서관을 향해 "올해 목표 수입 수 천만원을 달성하시오."라고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 모든 게 도서관을 담당하는 시설관리공단 소관이라서 모른다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시설관리공단 또한 구청장님 관할 아닌가요? 그리고 믿고 싶지 않지만 도서관을 시설관리공단에 맡겼다면 그야말로 비문화적 발상 아닐까요? 사람의 지성을 키우는 도서관을 주차장이나 도로 같은 시설로 여기고 있다는 말이니까요.
부탁드립니다. 콘크리트 구축물을 도서관으로 착각하지 말아주십시오. 사서를 만화대여점 직원으로 취급하지 말아주십시오. 도서관을 일정 수입을 거두어야 하는 치킨집으로 오인하지 말아주십시오. 도서관은 창조의 공간입니다. 아니 창조의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미래가 있고, 동작구의 미래가 있으며, 인류의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 아 생각났습니다. 위에 인용한 말을 한 이는 공자님이 아니라 저였습니다. 보잘것없는 편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흥식 서해문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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