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값 검사’의 이름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노회찬 의원이 14일 대법원 유죄판결을 받았다.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의 원심을 그대로 확정한 판결이라 의원직을 상실하게 됐다.
노회찬 의원은 대법원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이 저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것은 바로 그런 거대권력의 비리와 맞서 싸워서 이 땅의 정의를 바로 세우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그는 국회의원의 임무에 충실했고 대법관들은 그 임무를 이번 판결로 뭉개버렸다.
1997년 대선을 앞둔 몇 달 동안 안기부는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장 사이의 대화를 도청하여 녹음했는데 여기에는 삼성그룹이 대선에서 특정 후보자를 지원하는 내용과 주요 정치인과 고위 검사들에게 ‘떡값’이라 불리는 뇌물을 준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이 도청테이프가 우여곡절을 겪어 2005년 언론에 보도가 됐다. 이 여파로 당시 홍석현 주미대사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검사들의 명단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들 중 일부는 여전히 힘있는 현역 이었다. 노회찬 의원은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한 보도자료를 언론에 돌리고 같은 내용을 인터넷에도 올렸다. 그런 국회 발언과 보도자료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이 적용되어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인터넷에 공개한 것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내용이다.
정보기관의 도청이나 감청 같은 반인권적인 행위가 일어날 환경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통비법의 의도는 이해한다. 그러나 다른 모든 법과 마찬가지로 이 법 역시 개인의 권리와 공익의 확대를 위해 제정된 것이다. 개인의 권리와 공익의 확대가 더 보장되기 위해 행동한 것이라면 그를 참작하는 판결을 사법부가 내려야 한다. 법이라는 것이 인간의 모든 행위를 다 상정해서 규정을 만들어놓지 않기 때문에 개별적인 행위가 그 법의 정신에 맞는지 판단하도록 국민들은 그 많은 세금을 들여 사법부의 고급인력을 운용한다.
국내 최대기업으로부터 뇌물을 상납받는 검사가 존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국가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일이다. 그런 검사가 어떻게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공익을 확대하도록 범죄를 응징하는 국가의 역할을 대신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전말이 세세하게 밝혀져야 할 일이며 만일 검찰이 이 문제를 파헤치고 기소하는 데 소홀하다면 그것이야말로 더 큰 처벌을 감내하도록 만들어야 공익에도,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판결은 그런 검찰을 옹호한 셈이 됐다.
판결 자체의 모순도 많다. 보도자료로 언론사에 배포한 것도 면책특권이 적용된다면서도 유독 인터넷에 올린 것을 문제삼았다. 이것은 어찌 보면 국민에게 직접 전달되는 것만을 금지시켰다는 점에서 판결의 원뜻을 의심하게 만든다.
한국보다 인터넷 역사가 훨씬 오래된 미국에서는 인터넷을 통한 비방은 다른 수단을 통한 명예훼손보다는 오히려 느슨하게 판결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인터넷에 접근해서 반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접근권이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은 오류가 있어도 바로잡힐 가능성도 크다고 본다. 실제로 안강민 전 서울지검장은 즉각 반박하며 노 의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이것은 인터넷으로 올린 정보를 바로잡을 기회는 다른 검사들에게도 다 있었으나 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정확히 밝히 기회를 검찰 자신이 놓쳤다는 뜻이기도 하다.
검찰은 바로 가고 있는가. 노회찬 의원이 2005년에 던진 질문은 그것이었다. 당시 사건을 지휘하면서 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정치자금을 논의한 삼성 관련자는 물론 떡값 의혹 검사 전원에게 무혐의 처리한 황교안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현재 법무부 장관 후보이다. 국민들이 대답을 궁금해하는 질문을 던진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변인 자리를 잃었다. 이런 세상.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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