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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모델의 정치적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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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모델의 정치적 교훈

입력
2013.02.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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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훈

서울대 교수ㆍ사회정책학

OECD국가들은 저마다의 사회경제적 사정에 따라 서로 구분되는 복지국가를 꾸려가고 있다. 이들을 줄 세우고 대척점에 선 두 나라를 고르라고 한다면 한국과 스웨덴을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어떻게 재보아도 우리로부터 가장 먼 복지국가가 스웨덴일 텐데, 좌파도 우파도 저마다의 ‘스웨덴모델’을 들먹이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똑같은 스웨덴을 두고 각자의 이념에 따라 황금기와 위기기의 단면만을 보여주는 상황인데, 모르고 한다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요, 알고서도 그런다면 ‘자기 논에 물대기’다. 20세기형 복지국가전략의 최고봉에 스웨덴모델이 자리한다면, 객관성의 잣대로 실체를 따져봐야 한국을 위한 벤치마킹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

복지국가 스웨덴의 황금기 발전은 양차대전 직후에서 1970년대의 오일쇼크까지 이어진다. 스웨덴의 황금기는 남다른 국운 상승에서 시작된 까닭에 다른 나라들이 따라 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서구문명의 중단을 야기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는 직접적으로 노출되지 않았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복구경제의 특수를 마음껏 만끽한다. 스웨덴이 자랑하는 목재와 철강 분야의 전통적 기간산업들이 전후 유럽의 재건을 위한 전초기지로 둔갑한 것이다. 전쟁(warfare)에 대한 반동으로 복지(welfare)를 태동시킨 유럽 공통의 정신적 충격은 코앞에서 전쟁을 겪은 스웨덴인들에게도 매한가지로 절절하게 전해졌다. 전시의 비상체제가 국민의 단결을 잉태한 이후 ‘인민의 집’으로 유명한 스웨덴식 단결심은 복지국가로의 본격적 전환을 위한 촉매제로 작동하였다. 높은 조직률을 자랑하는 합리적 노조가 사민당의 장기집권을 뒷받침한 반면, 자기 지지층만 챙겼던 우파진영의 내부균열은 사민당의 독주를 막아내기에 역부족이었다. 살쇠바덴에서 이루어진 노사대타협은 극렬한 임금투쟁을 복지라는 ‘사회적 임금’으로 대체하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적응으로 결과하였다.

황금기가 영원할 순 없었다. 경제적 번영의 대양(大洋)을 질주하던 서구 자본주의가 오일쇼크라는 빙산에 가로막혀 침몰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기초보장을 강조하는 영국식 베버리지모델과 비례보장을 강조하는 독일식 비스마르크모델의 절묘한 결합으로 유명한 스웨덴식 보편복지도 다이어트를 강요받기 시작한다. 자유주의적 연금개혁을 앞서서 추진하고, 현금복지의 소득대체율을 하향조정하는가 하면, 일자리창출 효과가 큰 사회서비스복지를 확대하는 쪽으로 역량을 결집한다. 세수증대효과는 미미하면서 부자들의 투자의욕만 꺾는 것으로 비난받던 상속세와 부유세는 폐지해버린다. 대신 고세율의 소비세만은 애써서 유지하는 정면승부를 택한 결과, OECD 최고수준의 재정안정화를 삽시간에 이뤄낸다.

스웨덴모델을 구성하는 특징들의 상당부분은 따라 하기가 쉽지 않지만, 스웨덴의 복지정치가 추구했던 현실주의와 실용노선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배워야 한다.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힘든 장기집권의 선물이었을까? 스웨덴 사민당의 노련한 국정수행 능력은 선명성을 앞세운 우리네 정치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편 가르기 정치를 벗어난 연대성의 이름으로 100% 스웨덴을 향한 양보의 정치를 그칠 줄 몰랐으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민생과 경제를 앞자리에 두는 생활정치에 매진하였다.

한국형 복지국가의 앞날은 지금부터 펼쳐질 우리 모두의 복지정치가 좌우하게 될 것이다. 고용을 통해 성장과 복지가 함께 하도록 장시간근로나 남녀차별의 노동시장 관행부터 깨뜨리는 일, 복지수준과 부담수준의 균형을 찾기 위한 정치적 공감대를 차곡차곡 만들어 가는 일, 지금까지 미뤄왔던 이 모든 일들이 한국형 복지국가의 성패를 가르게 될 현실정치의 주요과제로 급부상 중이다. 단기적인 정책밑그림이야 집권세력 단독으로도 마련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인 성공을 위한 제도전환의 과제들은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노사가 양보해도 개혁이 쉽지 않다. 복지국가로의 ‘루비콘강’을 넘은 지금, 좌우를 넘어 미래를 함께 보는 타협의 정치가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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