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아누 호날두(28ㆍ레알 마드리드)가 '친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골 네트를 가르고 고개를 숙여 화제가 되고 있다.
14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마드리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레알 마드리드와 맨유의 2012~13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 축구팬들의 시선이 쏠렸다.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최고 명문의 맞대결이라는 점에 더해 호날두가 '친정' 맨유의 골문을 조준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양팀의 승부는 1-1로 끝났다. 맨유가 전반 20분 웨인 루니의 크로스를 대니 웰벡이 헤딩으로 마무리해 선제골을 뽑았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전반 30분 앙헬 디마리아의 크로스를 호날두가 헤딩으로 받아 넣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날 경기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골을 터트린 후 호날두의 표정이었다. 기쁨을 표현하는 대신 득점을 축하하는 동료들을 무덤덤하게 맞았다. 호날두는 경기 후 골 세리머니를 펼치지 않은 배경을 밝혔다. 그는 "나는 6년간 맨유에 몸 담았다. 이런 팀을 상대로 골 세리머니를 펼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말했다.
자신을 월드 스타로 만들어준 '친정'에 대한 의리를 지킨 것이다.
호날두는 맨유에서 스타덤에 올랐다.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은 그가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해준 은인이다.
호날두는 대서양의 절해고도인 마데이라 섬에서 태어났다. 비범한 재능을 보인 그는 12세의 어린 나이에 스포르팅 리스본 유소년 팀에 스카우트됐다. 2002년 스포르팅 리스본 성인 팀에 데뷔한 호날두의 운명은 2003년 8월 주제 알바라데경기장 개장 기념으로 열린 맨유와의 친선 경기를 통해 바뀌었다.
당시 18세에 불과했던 호날두는 맨유와의 친선 경기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의 베테랑들을 농락하는 빼어난 경기력을 과시했다. 2004년 호날두를 영입하려고 했던 퍼거슨 감독은 이 경기를 통해 생각을 바꿨다. 2003~04 EPL 시즌 개막이 2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퍼거슨 감독은 호날두를 맨유로 데려왔고 에버턴과의 개막전에 데뷔시켰다. 맨유 에이스를 상징하는 7번 등 번호를 부여한 것도 퍼거슨 감독이었다. 호날두는 당초 리스본에서 달았던 28번 유니폼을 희망했지만 퍼거슨 감독은 데이비드 베컴이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며 남긴 7번 유니폼을 호날두에 입혔다. 호날두에 대한 퍼거슨 감독의 애정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일화다.
호날두는 잉글랜드와 맞붙은 2006 독일월드컵 8강전에서 팀 동료 웨인 루니의 퇴장을 유도한 혐의로 잉글랜드 팬들로부터 원성을 샀다. 살해 위협을 받을 정도로 잉글랜드 축구팬들의 분노 수위가 높았다. 불안해하며 팀 복귀를 주저한 호날두를 직접 나서 설득한 사람이 퍼거슨 감독이다. 호날두는 2006~07 시즌 이후 절정의 경기력을 과시했다. 잉글랜드 어디를 가나 그에 대한 야유가 높았지만 올드 트래퍼드에서만큼은 호날두를 찬양하는 노래가 울려 퍼졌다.
호날두가 맨유의 골 네트를 가르고도 기뻐할 수 없었던 이유다.
호날두가 '친정'에 대한 예의를 지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2007년 9월 스포르팅 리스본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원정 경기에서 결승골을 터트린 후 골 세리머니를 펼치는 대신 두 손을 모아 관중석을 향해 고개를 숙였고 고향 팬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맨유와 레알 마드리드는 다음달 6일 오전 올드 트래퍼드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2차전을 치른다. 4년 만에 맨체스터 팬들 앞에 서는 호날두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주목된다.
김정민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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