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14일 '안기부 X파일'에 나오는 '삼성 떡값 검사' 7명의 실명을 홈페이지에 공개한 노회찬 의원에 대해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위반으로 유죄 확정 판결을 내리자 통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대표적 진보 정치인으로 꼽히는 노 의원은 허위사실 유포 등 핵심 공소 내용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고도, 인터넷에 도청 정보를 게재했다는 이유만으로 통비법에 발목을 잡혀 의원직을 상실하게 됐다. 공적 이익을 위해 위법하지 않은 수단으로 얻은 도청ㆍ감청 정보를 공개한 행위를 통신비밀 누설이라고 본 법원의 판단에 대한 의구심도 있지만, 그에 앞서 불법 도청ㆍ감청 행위와 이를 공개한 행위를 동일하게 처벌하도록 한 통비법 자체를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법원이 정보 공개의 공익적인 목적보다는 정보의 비밀에 무게를 두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는 점도 이 법 개정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대법원은 2011년 5월 노 의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일부유죄 취지로 파기하면서 "녹취록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공익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거나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고 하기 어려워 위법성이 조각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등 이 같은 기준을 유지해왔다. 법원은 이런 기준으로 안기부 X파일을 넘겨받아 보도한 기자들에 대해서도 통비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통비법이 위반자에 대해 벌금형 없이 무조건 실형에 처하도록 한 것도 지나치게 과도한 처벌 규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현역 의원은 금고형 이상 형을 받을 경우 의원직을 잃게 돼 있기 때문에, 노 의원의 경우처럼 통비법 위반 유죄가 인정되면 무조건 의원직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특히 정치권의 불만이 크다. 새누리당 의원 18명을 포함한 여야 의원 152명이 지난 4일 통비법 위반자에 대해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노 의원과 안기부 X파일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황교안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인연도 새삼화제다.
황 후보자는 2005년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횡령 및 뇌물공여 혐의를 받던 이건희 삼성 회장을 서면조사만 하는 등 부실 수사했다는 비판을 받은 X파일 특별수사팀을 지휘했다. 수사팀은 불법 로비 정황이 드러난 삼성 측 인사와 떡값 검사로 지목된 인사들을 모두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시민단체 등은 '검찰이 재벌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수사팀은 노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2심 재판부로부터 "떡값을 받았다는 안강민 변호사만 한 차례 조사했을 뿐 다른 관련자 수사는 전혀 하지 않았다"며 "기소 후에도 검찰은 이런 입증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며 부실 수사에 대한 질타를 받기도 했다.
한 법조계 인사는 "공익을 위해 삼성이라는 대기업의 뇌물과 떡값 검사를 고발했던 노 의원은 통비법에 걸려 의원직을 잃게 됐고,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는 법무부장관으로 영전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꼬집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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