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담배 피우는 아비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담배 피우는 아비들

입력
2013.02.13 12:00
0 0

지난 설 연휴엔 7시간 가까이 운전대를 붙잡고 앉아 있었다. 고향 가는 길이 멀기도 멀었지만, 정체 또한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름 밀리지 않는 시간을 택한다고 저녁 9시를 넘겨 느긋하게 출발했지만, 이런, 명절 전야 고속도로는 마치 가래떡을 잘게 썰어놓은 도마처럼 빽빽하기만 했다. 덕분에 고속도로 휴게소도 세 군데 넘게 들렸다. 혼자 차를 몰고 갈 때와는 또 달리, 아내와 아이들을 뒷좌석과 조수석에 태운 채 운전을 하다 보면 어깨 부위가 마치 음각판화 한 점 새겨놓고도 남을 정도로 딱딱하게 변해버려, 휴게소 간판만 보면 조건반사처럼 핸들부터 돌리는 것이 습관이 된 까닭이었다.

요즘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러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예전과 달리 아무 곳에서나 담배를 물고 연기를 내뱉을 수는 없다. 금연 구역이 휴게소 전체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 사람들은 휴게소에서 멀찍이 떨어진 흡연 구역까지 걸어가야만 한다. 엄청난 애연가 중 한 사람으로서 감히 말하자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핫바를 먹고 있는 아이들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연기를 내뱉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핫바에게도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음식점이나 공원에서 확대 시행되고 있는 금연 정책엔 아무런 이의가 없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 사람들만큼이나, 담배연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타인의 자율성을 생각하자면 당연 흡연자들이 불편을 감수하는 게 옳다. 그것이 흡연자들이 지녀야 할 공감능력이다.

하지만 근자에 거론되고 있는 담배가격 인상 움직임에 대해선 반감이 앞선다. 그것이 물가상승률의 반영이나, 원재료 가격 상승에 따른 불가피한 결정이라면 감내할 수 있으나, 금연 정책의 일환일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흡연자들의 정서 따윈 신경 쓰지 않는 안이한 입론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금연 운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들은 담뱃값을 5,000원, 7,000원으로 올리면 당장의 효과가 나타나고, 그것이 흡연자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는 길이라고 말씀하시지만, 그런 말씀들을 들을 때마다 흡연자들의 정서는 어느새 누군가에게 은혜를 받고 있는 당사자, 혹은 능동적 의지를 결여한 비독립적 인격체로 전락하고 만다. 실제로 흡연자들은 사회에서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의 불가피함을 살피기 이전에, 당위를 먼저 주장하는 사람들에게서 심각한 공감능력의 결여를 먼저 읽는다. 누군가가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거나, 또 무엇인가의 각성 효과에 매달린다면, 그 이면에 어떤 한숨이 있고, 또 어떤 회의가 깃들여져 있는지 고뇌하는 것, 그것이 먼저일 텐데, 작금의 금연 운동 방향은 무조건적인 '수치'에 매달리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그래서 담뱃값 인상으로 흡연율 수치를 줄이겠다는 발상 또한 흡연자들의 건강을 위한다기보단, 그로 인한 부가적인 효과에 더 매달리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담뱃값 인상을 해도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는 흡연자들과, 그렇지 않은 흡연자들이 있기 때문이다(제발 청소년 흡연 문제를 담뱃값 인상의 주요 요인으로 내세우지 마라. 청소년들이란, 예나 지금이나 돈이 없기 때문에 청소년들인 것이다). 예전 내가 알고 있던 어마어마한 부자 양반은 휘발유를 1리터에 5,000원씩, 1만원씩 받아야 한다고, 그래야 도로도 뻥뻥 뚫리고 물류비용도 줄이고 국민 건강도 좋아진다고 말씀하셔서,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적이 있었다. 과도한 비유일지 모르나, 담뱃값 인상 움직임을 바라보는 흡연자들의 정서 또한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 흡연 구역엔 나와 엇비슷한 '아비'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자신들이 몰고 온 자동차 쪽을 바라보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마도 그 자동차 안에는 그들의 가족들이 곤한 잠을 청하고 있으리라. 잠든 가족을 태우고 또 운전을 해야 하는 아비들은 졸음을 쫓고,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당분간 담배를 끊을 마음이 없다. 그것이 나의 불가피함이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