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명박 정부의 끝이 보름여 밖에 남지 않았다. MB가 대통령직을 마치며 갖게 될 가장 큰 회한은 무엇일까. 필자의 짐작에 그 중 하나는 틀림없이 방송과의 잘못된 관계설정일 것이다.
PD수첩의 광우병 방송 파동이며, 미디어법 사태, 170여일에 이르는 MBC 파업에 이르기까지 정치권력과 방송 간의 불화와 갈등으로 점철된 5년이었다. 양자 간의 잘못된 만남이 시종 국정을 뒤흔든 5년이었다.
이러한 문제의 일단에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안다. 방통위는 정치권력과 방송계 사이에서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종종 스스로가 갈등의 원인 내지 증폭자로 작용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방송정책 사안에 번번이 포획되면서 정책기능이 마비되기 일쑤였다. 방통위가 일치감치 정부조직 개편의 최우선 대상으로 떠오른 이유가 여기 있다.
그 기본방향은 첫째로 일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제외한 정책기능을 독임제 전담부처로 돌리는 정치와 정책의 분리. 둘째로 사분오열된 방송ㆍ정보ㆍ통신 정책기능의 통합이었다.
그런데 최근 방통위 구조개편 논의가 이러한 방향을 이탈한 채 혼선을 빚고 있는 양상이다. 그 잘못된 첫 단추가 방송정보통신을 전담하는 부처 신설이 무산된 일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안에 전담차관을 두고, 여러 부처에 흩어진 방송, 정보, 통신 정책기능을 한데 모으겠다는 후속 조치는 아쉬운 데로 올바른 차선책이었다. 그런데 다시금 여기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있다. 방통위가 담당한 방송 정책기능을 현재대로 존치시켜야 한다는 야당 측 주장이 그것이다. 국회에서의 정부조직 개편안 확정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막후의 정치적 딜에 따라 자칫 이 같은 결정이’단칼’에 내려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미디어 융합에 따라 방송과 통신이 더 이상 별개의 정책대상으로 구분되지 않음은 이제 중고등학생만 돼도 다 안다. 일례로 인터넷IP기반의 다채널 방송플랫폼 서비스는 방송인 동시에 통신이다. 융합형 서비스인 것이다. 방송을 담당하는 방송위와 통신을 담당하는 정통부가 이를 자신의 영역이라 다투는 바람에 이 서비스의 도입이 수년간 지체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가구의 다수가 즐겨 이용하는 IPTV다. ‘방송’전담 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주장이 어이가 없는 이유다.
설사 방송과 통신의 영역 구분이 가능하다고 치자. 방통위와 같은 합의제 기구의 목표는 의사결정의 효율성 제고라기보다는 정치적 합의 달성에 있다. 상임위원들 간의 의견차이로 논란이 지속되고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일은 문제적 상황이 아니라 이 같은 위원회의 본질이다. 거기에 방송 산업 진흥 기능을 맡길 때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자명하다. 그러기에 방송이건 통신이건 산업의 진흥은 합의제 위원회가 아닌 효율성을 극대화한 독임제 행정기관이 담당해야 한다. 그래야 스마트 기술혁명을 선도하고, 방송통신 영역의 신성장 서비스를 발굴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대신 방송통신위원회의 일차적 책무는 정치적 합의가 필요한 논쟁적 사안, 특히 정치적으로 독립적이고 민주적이며 다원적인 방송 거버넌스의 확립에 두어지는 것이 옳다. 이는 방통위의 위상을 위축시키고자 함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정치적 갈등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고민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방송통신위원회의 기능설정 같은 문제가 정치적 거래에 따라 막후에서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본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가까스로 기초를 세운 방송통신 융합 정책체계를 무산시키는 일은 결단코 없어야 한다. 야심차게 출발했던 MB정부가 집권초반 결정적 타격을 받고 5년 내내 비실거렸던 이유가 이처럼 섣부른 ‘단칼’이 초래한 후유증의 연쇄반응이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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