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나 다세대주택 등 공동주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현실을 쫓아가지 못하는 낡고 미비한 법규정이 층간소음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004년 4월과 2005년 7월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각각 바닥두께 및 경량충격음(58㏈ㆍ물건이 바닥에 떨어질 때 등), 중량충격음(50㏈ㆍ어린이가 쿵쿵 뛰는 소리 등) 기준을 마련한 뒤 근 10년을 버텨왔기 때문이다.
뒤늦은 대책, 실효성 논란
살인과 방화 등 강력사건으로 번지는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층간소음을 따로 다룬 법 자체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 층간소음 기준으로 언급되는 '주간 5분간 측정 평균 55㏈, 야간 45㏈ 초과'는 환경분쟁조정을 위한 일종의 가이드라인. 법적 기준은 아니다.
그나마 층간소음이 5분간 지속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극성맞은 아이라도 가정집에서 5분 동안 계속 뛰지는 않아 조정신청을 해도 피해 입증이 사실상 어렵다.
환경분쟁조정위는 이르면 올 3월부터 5분을 1분으로 줄이고, 기준치도 주간 40㏈, 야간 35㏈로 낮추기로 했지만 이 역시 법적 기준은 아니다.
국토해양부는 층간소음이 문제가 되자 주택건설규정을 전부 개정해 내년 3월부터 아파트 건설 시 바닥두께(벽식 210㎜ㆍ무량판 180㎜ㆍ기둥식 150㎜)와 바닥 충격음 기준을 둘 다 적용하기로 했다. 현재 하나만 선택적으로 맞추면 되는 것을 둘 다 충족시켜야 해 층간소음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이지만 벌써부터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한 층간소음 전문가는 "지금도 벽식 바닥을 210㎜로 시공하면 열에 아홉은 바닥 충격음 기준치를 다 통과한다"며 "지난해 여름 관련 공청회 때도 전문가 여러 명이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건설사 입장을 고려했는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동주택 자치규약을 주목하라
층간소음을 잡기 위해 바닥에 두꺼운 매트를 깔거나 가구 밑에 쿠션 등을 덧대는 소극적 방법들은 웬만한 가정에서 이미 보편화됐다. 하지만 방문 여닫는 소음 등은 옆집과 윗집에도 피해를 준다. 환경부 산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의 조사에서도 윗집(16,4%)과 옆집(1.4%)에서 층간소음 피해를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공동주택의 자치규약 마련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윤홍배 법무법인 민 변호사는 "가령 수 차례 소음을 유발한 집에는 방음 매트를 깔도록 하는 규약을 아파트 관리소장이나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도록 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치규약이 성공을 거둔 사례도 있다. 주거문화개선연구소가 지난해 부산 해운대구, 대구 수성구, 경기 하남시에서 아파트단지 하나씩을 선정해 추진한 자치규약은 톡톡히 효과를 봤다. 수성구 한 단지에서는 평균 1주일에 39건이 발생한 층간소음 민원이 규약을 정한 뒤 5건으로 줄었고, 지금은 1, 2건까지 떨어졌다.
한편 서울에 이어 인천 계양구의 한 아파트에서도 지난 10일 오후 10시쯤 층간소음 문제로 시비가 붙어 폭력을 휘두른 윗집 주인과 아랫집 주인 등 4명이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또 서울 면목동 아파트 층간소음 살인사건을 수사중인 중랑경찰서는 12일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달아난 김모(45)씨의 행방을 쫓고 있다. 지난 10일 층간소음에 불만을 품고 다세대주택의 윗집에 불을 질러 일가족 6명을 다치게 한 박모(49)씨는 이날 살인미수 등 혐의로 구속됐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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