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하려면 집이 부자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맞선 '쪽방의 꿈'은 거짓말처럼 현실이 됐다.
시골마을 출신인 두 여학생이 오르간 연주로 2013학년도 연세대 음대 교회음악과에 합격, 입학을 앞두고 있다. 주인공은 각각 경북 영주와 전북 진안이 고향으로, 19살 동갑내기인 차예지, 홍채린 양. 이는 재능기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기적 같은 일이었다.
지난해 11월 수학능력시험이 끝나자마자 서울로 올라온 두 학생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멘토' 명지대 박은혜 강사의 연습실을 드나들며 실기 시험을 준비했다. 숙소는 6㎡남짓 좁은 고시원 쪽방. 끼니는 라면과 인스턴트식품으로 때웠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에 월세 50만원도 부담됐기 때문이다. 예지양의 아버지는 시골 교회 목사로 있고, 채린양의 부모는 작은 난방유 공급회사를 운영하지만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다.
두 학생은 고교 2학년 때 관악, 현악 등 모든 소리를 낼 수 있어 그 자체로 하나의 오케스트라로 불리는 오르간을 처음 접했다. 오르가니스트인 박은혜 강사가 사회복지법인 '부스러기사랑나눔회'에 재능기부 의사를 밝힌 뒤 이 법인의 지역 지부를 통해 지원한 학생들 중 둘을 선발한 것. 두 학생은 어렸을 적부터 피아노를 쳤지만 오르간 소리의 웅장한 매력에 이끌려 오르가니스트의 꿈을 키우게 됐단다.
박 강사는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을 발견해 보석으로 세공하는 게 내 역할인데 두 학생은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음악적 기본기도 뛰어났다"고 말했다. 두 학생은 입시 때까지 박 강사에게 무료 레슨을 받았다.
쉬운 길은 아니었다. 레슨 1시간 받으려고 매주 토요일마다 4,5시간씩 버스 타고 박 강사의 연습실을 오갔다. 예지양은 "악기 자체가 생소한데다 주변에 오르간 연주자를 찾아보기도 어려워 계속 쳤던 피아노 대신 오르간을 택한 게 과연 잘 한 것인지 고민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때 마다 박 강사는 "기적은 꿈과 믿음, 성실함에서 나온다"며 둘을 독려했다.
1년 뒤 두 학생은 보란 듯이 대회에 나가 수상했다. 채린, 예지양은 각각 영산아트홀 주최 오르간 콩쿨과 한국오르가니스트 협회 콩쿨에서 고등부 3등을 차지하더니 총 9명(1명 수시)을 뽑는 연세대 음대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예진양은 "박 선생님처럼 재능기부를 통해 다른 사람도 돕는 행복한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달 14일 둘은 강원 속초로 2박3일 일정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떠난다. 들뜬 채린양은 "동기들과 선배들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기대된다"고 했고, 예지양은 "대학 들어가면 파마도 하고 예쁘게 꾸미고 싶다"고 부끄럽게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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