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고향을 가기 위해 서울역을 찾은 신혼 2년 차 김모씨는 금융회사 직원이 나눠주는 저축장려 전단지를 받고 헛웃음이 나왔다. 몇 가지 저축상품만 나열돼 있을 뿐 금리 등 실질적인 정보는 담겨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저축할 여력이 없는 현실이 서글펐다. 맞벌이지만 월급의 절반(250만원)은 신혼집 마련을 위해 빌린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 여기에 카드값과 관리비, 경조사비, 부모님 용돈 등을 빼고 나면 남는 돈은 불과 50만원 안팎. 김씨는 "서민들이 목돈을 마련하려면 고금리, 비과세, 소득공제 상품이 많아야 하는데 되레 각종 혜택을 줄이면서 저축장려 캠페인만 하면 뭐하느냐"고 한탄했다.
저금리에다 금융소득 과세마저 강화되는 시대다. 예금금리는 3%대 초반으로 뚝 떨어졌고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금액은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내려갔다. 2억원 초과 즉시연금의 비과세 혜택도 곧 사라진다. 이런 금융 환경 탓에 금융소비자 모두 피해를 볼 것 같지만 꼭 그렇지 만도 않다. 금융 부자들은 자산관리(PB)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절세상품 활용 등 세(稅)테크에 바쁜 반면, 서민들은 형편에 맞는 상품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1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ㆍ한화ㆍ동양생명 3개 보험사에 1월 한 달간 들어온 즉시연금 금액은 1조1,915억원. 두 달 전(7,149억원)에 비해 40%나 급등했다. 15일 세법개정안 시행령이 공포되면 즉시연금과 일시납 저축보험 모두 2억원까지만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다는 소식에 부자들의 현금이 쏠린 것이다. 물가연동채권, 브라질국채 등 비과세 상품에도 부자들의 돈이 몰리고 있다.
반면 목돈 마련이 시급한 서민들은 저금리와 비과세 상품 고갈 등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서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장기주택마련저축의 비과세 혜택이 작년 말 사라졌고, 개인당 9.5%의 이자소득세만 붙는 세금우대종합저축은 한도가 1,000만원밖에 안 된다. 당초 세금우대 한도가 4,000만원에 달했지만 2007년 2,000만원, 2009년 1,000만원으로 줄었다.
저축장려 캠페인에 나선 금융권이 8일부터 서울 일대에 뿌린 저축상품 안내서에는 자산형성을 위해 물가연동국채를 추천하고 있지만 최소 투자금액이 2,000만(하나은행)~5,000만원(신한, IBK기업은행)에 달해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애초 돈 없는 서민이 가입할 상품이라기보다는 이미 자산형성을 해놓은 중산층 이상에 맞는 상품이다.
그나마 18년 만에 재형저축을 부활하는 게 희소식이지만 저금리 탓에 금리는 기껏해야 4%대 초반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모 은행 관계자는 "4%대 중반이 넘어가면 역마진이 우려되는 상황이라 은행들끼리 금리 책정을 놓고 눈치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금융회사마다 금리, 상품 등이 대동소이해 서비스 경쟁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며 "서민지원책으로 저금리 대출상품만 내놓지 말고 실질적으로 자산을 형성할 수 있는 고금리, 소득공제 상품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서민들의 노후를 위해 강제저축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손상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은 근로자가 월급에서 내놓는 액수만큼 회사가 지원하는 매칭 방식의 기업연금을 제도화해 서민들이 월급을 다 소비해도 나중에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다"며 "우리나라처럼 개인이 개인연금, 퇴직연금 등을 통해 스스로 자산형성과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구조는 후진국형"이라고 말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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