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이 체조경기장에서 공연한 영상을 보고 정말 후회했어요.(웃음) 인디 밴드로선 그곳에서 처음 하는 건데 누군가 먼저 저질러야 다른 팀들도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니 더 잘해야죠."
인디 듀오 십센치(10cm)의 보컬 권정열(30)은 대형 공연장에서 갖는 첫 콘서트를 앞두고도 전혀 긴장하지 않는 눈치였다. 1만여석 중 벌써 절반 이상이 팔려나갔기 때문일까. 그는 "공연이 확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좋은 쪽으로만 상상했는데 확정 후엔 상상 속의 그림이 점점 안 좋아졌다"며 웃었다.
23일 십센치가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연다. 빅뱅,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정도의 티켓 파워가 있어야 설 수 있는 무대다. 기타를 연주하는 윤철종(31)이 "우리의 음악엔 다양한 면이 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자, 권정열이 "멤버들이 일렬로 서서 부르는 곡도 있고 관객들과 춤추고 뛰며 부르는 곡도 있는데 자꾸 연습하다 보니 체조경기장이 우리와 잘 맞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3년 전 데뷔하자마자 '죽겠네'와 '아메리카노' 등을 히트시키며 혜성처럼 등장한 십센치는 두 장의 정규 앨범과 두 장의 EP로 '인디'의 한계를 넘어서는 인기를 끌고 있다. 정규 1집 '1.0'의 판매량은 3만장을 넘어섰다. '인디계의 아이돌'로 불리는 이유다. 권정열은 "예전엔 우리를 가리켜 인디 밴드가 아니라고 하면 기분이 안 좋았는데 생각해 보니 대중이 비주류였던 우리를 주류로 만든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14일 내놓는 두 번째 EP '더 세컨드 EP'는 공연을 위해 급히 만든 앨범이다. 콘서트의 흐름 상 필요한 곡이 부족해서 이전에 만들어 놓은 곡들을 포함해 다섯 곡을 한데 모았다. "이번 EP 곡들은 공연 후반부에 집중 배치될 겁니다. 반면 정규 2집 수록곡은 공연에서 비중이 크지 않아요. 즐기기보단 감상 위주의 곡들이 많아서죠."(권정열)
십센치의 노래는 성적인 뉘앙스로 가득한 가사와 '루저' 감성을 담아 20, 30대들로부터 특히 인기가 높다. 권정열은 "감성이나 정서가 바뀔 만도 한데 원래 출신이 그래서인지 가사를 써놓고 보면 여전히 찌질한 면이 보이더라"라며 웃었다. MBC '무한도전'과 TV 광고에 출연하며 돈도 꽤 벌었지만 "당장 수중에 돈이 없어 이번 EP도 겨우 제작했다"(윤철종)며 능청을 떨기도 했다.
십센치는 계속 변하는 음악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메탈리카 같은 밴드가 멋있죠. 우리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행보를 보면 다들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우리 둘 다 싫증을 잘 내서 한 우물을 파는 건 잘 못 하지 않을까 해요. 그래도 음악을 하는 걸 싫증 내는 건 아닙니다. 이거라도 안 하면 어디 가서 친구도 못 사귈 사람들이니까요. 하하."(권정열)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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