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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 쓴소리를 기대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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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 쓴소리를 기대하지 마라

입력
2013.02.1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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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대통령 시절의 일이다. 대통령이 시민사회 원로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이런 저런 일로 한참 시끄러울 때였다. 돌아가며 이야기를 하는데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직언과 고언, 즉 바른 소리 쓴 소리를 많이 들으라는 이야기였다. 대통령이 세상 민심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좀 제대로 알고 똑 바로 하라는 말의 점잖은 표현이었다..

기분 좋게 응대하던 대통령의 표정이 조금씩 달라졌다. 할 말이 있으면 바로 해 주면 좋겠는데, 그러지는 않고 직언ㆍ고언을 들으라는 등의 원론만 계속되니 짜증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뭔가 불편한 말을 하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야말로 직언이 터져 나왔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직언ㆍ고언 많이 듣고 있다. 인터넷 상에도 널려 있다. 직언ㆍ고언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풀 수 있는 혜안을 가진 현자(賢者)가 필요하다. 주변에 현자 있으면 소개해 달라."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직언ㆍ고언을 들으라 했더니 우리한테 바로 직언을 해? 그리고 현자를 소개해 달라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집에 가라는 이야기 아니냐? 원로들 중 일부는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다음날 기자들을 통해 참석자들의 반응을 들었다. 영 신통치 않았다.

흔히들 대통령에게 직언ㆍ고언을 하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야기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원로들도 쉽지 않은 것, 그것이 대통령을 향한 직언이고 고언이다. 큰소리치는 사람도 바로 앞에 앉게 되면 태도가 달라진다. 사실 부부간이나 형제간에도 잘 못하는 것이 직언ㆍ고언 아닌가? 자주하게 되면 효과도 떨어지고 서로가 괴로워진다.

이리저리 어렵다는 말인데, 최근 이와 관련하여 걱정이 더 커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성격과 태도이다. 권위적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싫은 소리를 잘 못 듣는다는 소문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소문대로라면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인터넷이나 SNS 문화에 익숙한 경우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실제로 인수위나 당선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누군가는 한두 마디 했을 법한 문제들이, 또 웬만하면 당선인도 그렇게 처리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문제들이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채 그냥 지나갔다. 정부조직개편안만 해도 그렇다. 바꿀 이유도 없는 이름까지 바꾸어 놓은 경우도 있다. 어느 누구도 아무소리 못하고 당선인이 뱉어 놓은 말에 눌려 그냥 지나 보냈다는 뜻이다.

며칠 전 눈길이 가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정부개편안을 두고 당선인 앞에서는 아무 소리도 못하던 사람들이 자기네들끼리의 회의에서는 온갖 문제를 다 제기하는 모습이었다. 상황이 이 정도 되면 대통령에 전달되는 모든 정보는 대통령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왜곡된다. 국정은 그만큼 엉망이 된다. 대통령도 심각한 상처를 입는다. 권력의 제1법칙이다.

노대통령과 마주 앉았던 원로들처럼 '귀를 열어라', '직언ㆍ고언 할 사람을 옆에 두라' 등의 하기 좋은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귀를 여는 일은 어렵고 내리 직언ㆍ고언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열고 찾고 하다가 5년의 세월이 다 간다.

오히려 현자 흉내를 한번 내어 보았으면 한다. 조언을 하나 남긴다. '다양한 의견과 제언을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라.' 예컨대 모든 보고서에 그 보고서를 작성한 과정을 적고, 그 과정 속에 있었던 각종 회의의 회의록을 보기 쉬운 전자파일로 첨부하게 하면 좋다. 대통령이 없는 가운데서 나온 다양한 의견들을 잘 참고하면 직언과 고언을 듣지 않고도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혜안이 생길 수도 있다.

사람이 그렇다. 누가 직접 싫은 소리를 해 오면 거부감이 생긴다. 그러나 나와 떨어져 나와 관계없이 한 이야기를 듣고 내 스스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라는 말이다. 대통령이 될 사람과 그 주변에서 일할 사람들이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지금당장.

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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