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한 일이죠. 여러 상을 갑자기 몰아서 받기는 처음이라 어안이 벙벙했어요."
극단 청우 대표인 연출가 김광보(49)는 상복이 터진 지난해를 이렇게 말했다. 한국연극협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연극대상에서 '그게 아닌데'(이미경 작)로 최고상인 대상을,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하타사와 세이고 작)로 연출상을 받았다. '그게 아닌데'는 동아연극상의 작품상과 연출상,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베스트 연극 3, 월간 이 선정한 올해의 베스트 연극 7에도 꼽혔다. 히서연극상은 올해의 연극인으로 그를 뽑았다. '2012년은 김광보의 해'라고 할 만하다.
그는 '전업' 연출가다. 대학로에 섹스 코미디가 범람하던 1994년, '연극다운 연극을 하자'고 극단 청우를 만들어 연출가로 나선 지 19년, 대학 강의 같은 다른 일 하지 않고 연출만으로 먹고 살려니 "죽어라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했다. 매년 평균 서너 편, 지난해는 5편을 연출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연출 의뢰가 안 들어오니까요. 그동안 몇 작품이나 했나, 설 연휴에 세어 봤더니 신작 56편에 재공연 16편을 합쳐 72편이나 되더라구요. 휴우."
올해도 바쁘다.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공연 중인 극단 청우의'싸움꾼들'(김민정 작)을 시작으로 '그게 아닌데' 재공연(6월), 국립극단의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김지훈 작, 9월), 대전시립극단의 셰익스피어 연극(작품 미정, 11월 말), 청우의 '동토유쾌'(하타사와 세이고 작)까지 5편을 연출한다.
김광보 연출의 핵심 기둥은 텍스트와 배우다. '텍스트 분석에 뛰어난 연출가' '김광보 연극의 중심에는 항상 배우가 있다'는 평을 듣는다.
"연출가의 시각을 강조하기보다 희곡 텍스트 자체의 의미를 파고 들어서 부각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텍스트 분석에 유난히 많은 시간을 쏟는 편이죠. 현대예술은 자주 텍스트 무용론을 말하지만, 모든 상상력은 텍스트에서 나옵니다. 좋은 텍스트를 만나면 얼마나 기쁜지! 좋은 배우가 주는 감동도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니까요. 이호재 윤소정 같은 배우는 정말 존경스러워요. 연극에 임하는 태도부터 인간적인 모습까지 모든 면에서 규범이 될 만한 분들이죠."
그는 '연출가는 무형의 공간에 기거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희곡을 입체화해 숨결을 불어 넣고 질감을 입혀 무대 위에 연극이라는 집을 짓지만, 그 집은 공연이 끝나면 사라진다. 같은 작품 같은 배우라도 매번 모습과 느낌이 달라지는 것이 연극이므로. 그는 생각한다,'연출가의 일이란 참 공허하구나'라고.
그래도 계속한다. '내일 할 일이 없으면 불안하다'는 자칭 '일 중독자'이지만, 3~5월 석 달은 모처럼 휴식한다. 문화예술위원회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발돼 일본 신국립극단에서 연수를 하게 됐다. 도쿄 신국립극장의 모든 공연을 무료로 보면서 쉴 기회다. 재충전을 하고 돌아와서 보여줄 김광보 연극에 팬들이 거는 기대가 크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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