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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월급부터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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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월급부터 줄이자

입력
2013.02.1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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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 상ㆍ하원 의원들은 연간 17만 4,000달러(약 1억 9,000만원)의 세비(歲費)를 받는다. 의원 세비는 매년 물가상승률 등을 반영해 자동 인상된다. 그런데 지난달 새 의회(113대)가 출범한 지 한 달여 만에 의원들이 제출한 세비 삭감 법안이 16개를 넘었다. 법안은 연방정부가 적자 운영을 하면 대통령과 부통령, 의원 세비를 10% 감액하자는 내용부터 ▦연방정부가 균형예산을 달성할 때까지 세비 20% 삭감 ▦세비 자동인상 법률 폐지 ▦의회가 예산결의안을 채택하지 않으면 세비 전액 반납하자는 내용까지 다양하다.

중국에선 공산당 간부들과 함께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공기업 고위 간부들의 임금 삭감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 중국선박그룹(中船集團)이 책임자급 간부의 봉급을 30% 삭감하는 등 주요 공기업들이 20~30%씩 보수를 줄였다. 1조원 이상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힌 기업인 천광뱌오(陳光標)가 숨어 있는 부호들과 기업인, 연예인 등의 재산공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3월 양회(兩會ㆍ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기간에 제출할 것이라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체제 출범 후 빈부 격차 해소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중국 안팎의 해석이다.

우리나라 선량들도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특권 포기와 새 정치를 앞다퉈 약속했다. 국회의원의 영리 업무 겸직을 금지하고 의원연금을 폐지하며 세비를 30% 삭감하겠다는 등의 다양한 쇄신안을 쏟아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으레 그랬듯이 이번에도 유야무야 되는 분위기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의 핵심 공약이었던 재벌 총수ㆍ임원 급여 공개는 재계의 경제위기론에 밀려 이미 형해화했고, 연례행사마냥 지적돼 온 공기업의 과도한 임금과 방만 경영 사례도 좀체 개선되지 않고 있다.

미국 의원들이 세비를 깎는다고 만성적 재정적자가 해결될 리 만무하고, 중국 공기업 간부들이 봉급을 줄인다고 심각한 빈부격차가 쉽게 해소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득권층의 양보와 희생이 사회에 미칠 긍정적 변화는 결코 가볍지 않다. 최소한 국민에게 사회지도층을 믿고 따를 수 있겠다는 새 출발의 계기는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직무수행 지지도는 48%로 떨어졌다. 1987년 대선 이후 역대 당선인 가운데 가장 낮은 지지율이다. 그런 박 당선인이 9일 유튜브를 통해 국민에게 새해 인사를 했다. "과거 국가 중심의 운영을 과감하게 바꿔 국민의 삶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국정운영을 펼치겠다"는 다짐이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성장보다 고용에 경제정책의 우선 순위를 두고 향후 5년 안에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은 것도 국민의 삶을 중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일자리 창출이야말로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박 당선인 앞에 놓인 경제환경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2~3%대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는 글로벌 경기침체 상황에서 고용률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관료 집단과 정치인, 공기업, 대기업 임직원과 정규직 노조 등 기득권 세력의 양보와 협조를 끌어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임금 격차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이에 따른 소득 불평등과 노동시장 양극화는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지경이다. 복지 확대를 위한 재원 마련이 시급한 상황에서 기득권층의 양보를 통한 일자리 늘리기는 큰 힘이 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 '일자리 나누기 범국민운동'에 나설 것을 제안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공직사회부터 국민과 고통을 함께 하겠다는 솔선수범의 자세가 필요하다. 대통령부터 월급 삭감을 선언한 뒤 장ㆍ차관과 고위 관료,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도지사, 시장ㆍ군수 등의 동참을 유도하기 바란다. 그러면 임직원 평균 연봉이 억대라는 공기업도, 등기임원 연봉이 수 십억~100억 원을 웃도는 재벌기업도 일자리 나누기에 동참하지 않겠는가.

고재학 경제부장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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