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개포동 일대 무허가 판자촌 구룡마을의 민영개발 추진 과정에서 마을 내부 계파 다툼에서 밀려 쫓겨난 철거민들이 개발사업자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6월 구룡마을에 대해 공영개발 계획을 확정하고 거주자 전원에게 공공임대 아파트를 공급하기로 했으나 이미 거주지를 잃은 이들은 보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부동산 개발업자 정모(69)씨는 구룡마을이 개발될 경우 25평 아파트를 실공사비만 받고 싼값에 제공하겠다는 조건으로 마을 주민들을 설득, 동의서를 받은 뒤 2000년대초 1,000억여원에 마을 토지를 사들였다. 하지만 정씨가 이후 1,260세대를 초과하는 마을 주민에 대해서는 아파트 입주권을 줄 수 없다고 하자 주민들은 민영개발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려 격렬한 분쟁이 벌어졌다. 정씨는 2005년 반대파였던 김모씨 등 44명을 상대로 토지인도 및 철거소송을 내 승소한 뒤 2008년 이들의 거주지를 강제 철거했다.
마을에서 쫓겨난 김씨 등은 "정씨가 토지 매수 과정에서 마을 주민 전체에게 입주권을 주기로 했다가 말을 바꿨고, 민영개발 찬성파인 주민자치회장 유모씨를 사주해 반대파 주민들을 내쫓게 한 뒤 차별적으로 강제 철거를 했다"며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6부(부장 정일연)는 김씨 등 21명이 정씨와 대한토지신탁을 상대로 낸 8억4,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주민자치회와 정씨, 강남구청이 협의해 주택 분양 자격을 부여한다'는 협약 내용에 비춰볼 때 정씨가 마을 주민을 속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민자치회 소속 주민들(개발 찬성파)과 마을자치회 소속 주민들(반대파) 사이에 분쟁이 발생한 점은 인정되지만, 정씨가 주민자치회장 유씨에게 반대파 축출을 지시했다고 볼 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없으며 철거 또한 합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고 밝혔다.
한편 주민자치회장 유씨는 아파트 입주권을 빌미로 부동산 투기꾼들에게 4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5월 징역 1년6월에 추징금 4억원이 선고됐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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