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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사진'을 버린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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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사진'을 버린다는데

입력
2013.02.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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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에 우스개 같지만 흥미로운 말을 들었다. 박근혜 당선인을 열렬히 지지한 어르신들이 지갑에서 '박근혜 사진'을 빼내 버린다는 얘기였다. 아마도 대선 기간 어디선가 받은 사진 박힌 명함을 여태 간직하고 있다가 홧김에 내버린다는 말인 듯 했다.

어르신들이 화가 난 까닭은 인사 문제로 발목 잡혀 허둥대는 모습에 실망한 때문이다. '박정희 향수'를 바탕으로 박근혜를 열성으로 응원하고 잔뜩 기대한 이들이 지레 낙담한 결과일 것이다. 노인 특유의 성마름 탓일 수 있지만, 여론지지율이 50% 아래로 떨어진 것을 보면 그저 예삿일은 아닌 성 싶다.

설 연휴 전날, 새 총리 후보자를 지명한 게 분위기를 크게 바꾼 것 같지는 않다. 정홍원 후보자는 나름대로 공직 경력이나 처신이 훌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역대 정부가 내세운 첫 총리들에 비해 경륜과 명망이 떨어진다. 법조계가 생소한 국민은 '정홍원이 누구냐?'고 되물을 법 하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이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탁월한 면모를 오버랩시켜 추억한다. 그런 이들은 박 당선인의 사람 고르는 안목에 실망할 만하다. 그들이 믿고 성원한 박근혜는 새 정부 인선에서도 번듯한 인물을 줄줄이 내세워야 한다. 그렇게 지지자들에게 새삼 뿌듯한 자부심을 안겨야 마땅하다. 그런 믿음과 기대가 처음부터 어긋나는 듯한 상황에 실망하고 낙담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대로 위안거리는 있다. '꼿꼿장수' 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고른 것이다.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낸 경력에다 북한 김정일 앞에서 고개 숙이지 않은 꼿꼿함에 대한 국민의 칭송이 무엇보다 큰 훈장이다. 군 경력이 전혀 없는 여성 대통령에 대한 우려를 내심 갖고 있던 지지자들에게는 든든한 국가안보실장을 기용한 것은 다행스럽다.

다만 안보실장보다 경호실장을 앞세워 발표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실무진의 실수라지만, 열성 지지자를 비롯한 국민이 뭘 걱정하고 어떤 기대를 하는지 깊이 헤아리지 못하는 모습으로 비친다. 이런 일에 실무진의 실수가 그대로 국민 앞에 드러나는 건 당선인을 보좌하는 조직 전체가 명민하지 못하거나 게으르고 무심한 탓으로 볼 수밖에 없다. 민심을 열심히 읽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연휴 직후 발표한다는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 인선도 안심할 수 없다. 특히 비서실장을 비롯한 비서진 인선이 주목된다. 우리 현실에서 대통령의 리더십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고 정부 각 부처의 이견과 이해를 통합, 조정하는 역할을 비서실이 수행하기 때문이다. 헌법상으로는 국무조정실을 거느린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 그러나 개념이 모호한 '책임 총리'라 하더라도 복잡다단한 정책적 입장과 정치적 이해가 엇갈리는 국정 전반을 주도적으로 통제하기 어렵다. 중요한 국정 이슈일수록 대통령과 청와대 보좌진에 조정과 결정이 맡겨지기 마련이다.

대통령 리더십의 핵심은 올바른 정책 목표를 설정, 그 목표를 위한 컨센서스를 이루는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야 정치세력뿐 아니라 정부 부처와 지방 정부, 다양한 이익 단체, 주류 언론과 뉴미디어 등 숱한 집단과 이해가 얽혀있다. 특히 정치ㆍ사회적 분열이 심각한 현실에서는 정책과 정치가 엉킨 실타래를 잘 풀어 국정 목표를 이루는 폭넓은 조정 능력이 긴요하다. 대통령이 이 벅찬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자신을 대신할만한 안목으로 이견과 갈등을 조정하는 비서실장이 필요하다.

국무총리가 없는 미국의 백악관 비서실장은 실질적으로 대통령보(補), 'deputy president' 역할을 한다. 대통령의 권위를 고려해 실제 그리 부르지는 않지만, 대개 자문 역할에 그치는 부통령(vice president)보다 일상적으로 훨씬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박 당선인은 이를테면 박정희 시대 권력 안정기와 말기의 비서실장들부터 되돌아볼 일이다.

강병태 논설고문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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