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승리수산과 초원전집의 단골이다. 이제는 명절 전날에나 들르고 있지만 그래도 햇수로만 십년 째. 주인들이 나를 단골이라 여길 것 같지는 않으나, 내 편에서야 어쨌거나 단골이다.
승리수산은 형제의 생선가게다. 형은 주로 안쪽에서 도마와 칼을 맡아 생선을 손질한다. 동생은 매대 옆에서 그날의 물 좋은 품목으로 호객을 하며 손님을 상대한다. 얼굴부터 성품까지 닮은 구석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두 남자가 형제라는 걸 알게 된 건 동생의 너스레 때문이었다. 우리 형 장가 좀 보내줘요. 저렇게 잘생겼는데 여자 한번 제대로 만나본 적 없어요. 넉살좋게 그는 장 보러 나온 엄마들에게 애교를 부리곤 한다.
승리수산의 건너건너에는 초원전집이 있다. 세 모녀의 반찬가게다. 내가 초원전집의 단골이 될 즈음 그 집 둘째딸은 앳된 여고생이었다. 엄마가 전을 부치고 언니가 음식을 포장용기에 담는 동안, 뚱한 얼굴로 값을 일러주고 거스름돈을 내주는 일이 둘째딸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에게서는 제법 젊은 주인 태가 난다. 손도 빠르고 부침개 뒤집는 솜씨도 그만이다. 손님들을 향해 미소와 인사를 건넬 줄도 안다.
모녀의 반찬가게를 거쳐 형제의 생선가게를 지나 주렁주렁 비닐봉지를 들고 시장골목을 빠져나올 즈음, 내게는 이런 생각이 스쳐간다. 누가 누굴 먹여 살리는 게 아니라, 한 집에서 함께 벌고 함께 먹고 함께 눕는 가족의 삶. 명절은 이런 일상에 대한 그리움의 날이 아닐까 하고.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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