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시골의 겨울은 문화로 활기차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시골의 겨울은 문화로 활기차다

입력
2013.02.08 12:01
0 0

입춘이 지났지만 입춘 추위는 꿔다해도 한다는 말이 있듯이 설 연휴를 낀 한파가 매섭다. 가만히 집안에 있어야 하는 때가 겨울의 어원이라 한 것이나, 겨우 살아남기라 겨우살이라 했다는 게 실감나는 때다. 그래도 봄, 여름, 가을에 비하면 다소 여유로운 것이 사실이지만 농촌의 겨울이라고 마냥 집구석에만 있게 놔두지는 않는다. 소나 돼지가 겨울에는 여물을 안 먹는 것도 아니고, 하우스 농사를 짓거나 이런저런 미뤄 둔 일 보느라 분주하기만 하다. 게다가 설날 같은 명절이 끼어 있으면 더욱 그렇다.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고향과 가족을 찾은 사람들로 마을이 떠들썩하다. 한적하던 시골에 때 아닌 주차난, 그래도 어르신들은 손자손녀 보는 재미에 신이 나는 거 같다. 아침에 빙 둘러앉아 직접 감자를 강판에 갈아서 만드는 옹심이 떡국을 시작으로 하루 종일 이어지는 설날 음식의 향연이 푸짐하다. 시골은 같이 만들고 나누어 먹는 문화라 혼자 사는 나도 주민들이 종일 갖다 주시는 기름진 끼니음식과 달짝지근한 간식들로 배가 터질 지경이다. 명절 다이어트는 물 건너갔다.

겨우내 을씨년스러운 읍내장터나 오일장도 이때만큼은 반짝 대목이다. 천장까지 쌓아놓은 과일박스들, 가게마다 나름 기획한 선물세트들은 바삐 서둘러 떠나오느라 선물을 미처 준비해 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요긴하게 팔린다. 대목장 보러나온 김에 얼큰한 메밀칼국수에 전병과 부치기로 막걸리 한 사발 하면 겨울바람에도 몸이 뜨끈하다. 볼 건 많아도 살 건 없다는 시골 장터지만 요즘은 장꾼들의 호객 외에도 갖가지 문화행사로 보는 재미가 있다.

시골의 자연은 또 어떠한가. 유달리 청정한 공기, 눈부신 설경과 탁 트인 조망은 겨울 산의 백미다. 가을동안 수북이 쌓인 낙엽들이 산 속의 땅을 덮고 밑에서 거름을 만드는 열로 흙은 뜻밖에 따뜻하다. 꼭 국립공원이 아니더라도 야트막한 마을의 뒷산이나 임도가 오히려 호젓하고 여유롭게 즐기기에는 제격이다. 마을 어귀에서 채비를 단단히 갖추고 하얀 김을 내뿜으며 겨울 숲길을 걷다보면 아스라이 내려다보이는 마을이 유달리 정겹다. 마을을 찾은 등산객들은 산행을 끝내고 마을 공터에 세워둔 버스 곁에서 삼삼오오 둘러앉아 삼겹살을 구우며 지나던 주민들과 특산물 흥정을 한다. 산에서 하는 체험 프로그램들은 들입다 앞만 보고 오르는 산행이 아니라 숲을 깊게 느끼게 해 준다.

제5의 계절이라 불리며 겨우내 벌어지는 쾰른의 카니발이나 삿포로, 하얼빈 같은 세계적인 축제는 아니더라도 지난 몇 년간 방방곡곡에서 생겨난 겨울축제들은 지역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눈과 얼음 그리고 얼어붙은 강을 활용한 축제들은 도대체 겨울에는 올 일이 없던 시골마을을 들뜨게 만든다. 옛날 같으면 비수기였을 동네의 숙박업소들은 방 찾는 사람들로 난리다. 꽁꽁 언 강마다 사방에 구멍을 내어 물고기 몇 마리 잡아보겠다고 눈이 뚫어져라 물속만 들여다보는 게 다가 아니다. 축제들에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으니 낚시꾼 아빠만이 아니라 온 가족이 다 같이 놀기 그만이다. 이제 축제는 손님들만의 것이 아니라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 단합을 다지는 계기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시골은 산이나 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 이웃 바닷가 마을의 겨울 정취도 각별하다. 밤새 조업을 마치고 귀항하는 배 들어오는 시간에 맞추어 열리는 왁자지껄한 포구의 새벽시장은 모두가 덩달아 활기차다. 막 들어온 생물들로 저녁 때 먹을 횟감을 푸짐히 맞추어 놓으면 안심이 된다. 단골 곰칫국 집에서 얼큰한 국물로 어부들과 어울려 아침을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하다. 이제는 많이 뜸해졌지만 새해 즈음이면 난전거리의 고사나 풍어제가 열리기도 하니 잠시 멈추어 만선과 대박을 같이 기원하기도 한다.

해 뜨자 해 넘어가는 산골 마을이든, 쨍 얼어붙은 바닷가 마을이든 시골은 겨울이 오히려 건강하고 활기차다. 그리고 자연에 문화가 더해지면 더욱 즐겁다. 추위에 당당히 즐기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주민으로도 여행객으로도 마을은 충만한 자원을 제공한다.

이선철 용인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