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자원부국 콩고민주공화국에는 '키부야'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콩고의 1인당 GDP(국내 총생산)가 163달러에 불과해 인구의 25%가 1.25달러도 안 되는데 반해, 키부야 주민들은 1인당 600달러의 소득을 누린다고 한다. 비결은 한국에서 공부한 은쿠무 박사가 수입해 온 이른바 '새마을운동' 덕분이다. 벽돌집 짓기, 마을길 넓히기, 공동구판장 운영을 통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었다. 지금은 키부야 같은 마을이 20여 군데에 이른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방한한 미얀마대통령은 경기 성남의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을 직접 방문하고, 한국개발연구원을 본 뜬 '미얀마개발연구원', 한국의 KOTRA 같은 'MYTRA'도 만들겠다고 밝혔다. 중앙아시아의 자원보고 몽골도 한국을 모태로 한 '새로운 길 운동'이 한창이고, 엥흐바야르 전 몽골대통령이 직접 회장에 나설 정도로 관심이 높다. 연예계에 '아이돌'이 있듯 지구촌에도 '아이돌 국가'가 있다. 가난을 벗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려는 신흥국들이 한국이라는 아이돌을 흉내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동남아, 중남미, 아프리카 같은 신흥국들의 성장세가 심상치 않다. 며칠 전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13년은 신흥국의 GDP가 사상 처음으로 선진국을 넘어서는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통상이 주로 미국, 유럽연합(EU), 일본과 같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진행돼 왔다면, 앞으로는 신흥시장이 세계 통상의 주역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신흥국의 시대 우리의 통상정책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최근 관가에서는 소위 '산+통'이냐 '외+통'이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통상업무를 산업자원통산부에 두겠다고 발표한 이후 일부에선 외교부 존속을 격렬하게 주장하는 모습이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신흥국과의 통상은 미국‧EU 교역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신흥국들은 자동차, 농산물, 의약품 등을 협상테이블에 쭉 늘어놓고 사안별로 치열하게 승부를 보는 협상보다는, 교역에 덧붙여 산업협력까지 꾀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산업과 통상이 결합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현재 진행중인 한국-인도네시아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협상만 보더라도 인니측은 시장접근, 무역‧투자 이외에 '능력개발'을 위한 경제협력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FTA의 '자유무역'이란 어절보다 CEPA의 '경제동반자'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에 대한 방증이다.
산업과 통상의 결합으로 자원외교에 한층 탄력이 붙을 것으로도 기대된다. 그들이 우리의 성장노하우를 배워가는 대신, 우리는 미래 경제전쟁의 승패를 가르게 될 '자원'을 확보하게 된다. 이를테면, 미얀마의 천연가스, 몽골의 석탄, 콩고의 구리, 코발트를 '한강의 기적'과 맞바꾸는 식이다.
산업통상형은 수출주도형 국가, 제조업 국가의 보편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이 산업통상형 국가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반면, 외교통상형 국가는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의 자원수출국으로 우리와는 사정이 다른 나라들이다. 정보통신의 발달에 따라 통상의 이슈도 과거와는 달라졌다. 지난 한 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삼성-애플의 분쟁처럼 관세, 통관보다는 특허, 표준, 기술, 디자인 등 산업이슈가 통상의 핵심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얼마 전 한 유명한 협상가가 이런 말을 했다.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두 가지다. 첫째는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자신의 '포지션'을 이야기하기 전에 질문을 하는 것이다"라고. 자국의 산업이익을 지키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지금 새 정부가 통상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곱씹어봐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