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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북극해를 따라 18개월 달린 서른 세살 '방랑 탐험가' 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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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북극해를 따라 18개월 달린 서른 세살 '방랑 탐험가' 의 일기

입력
2013.02.0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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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2월 29일 그린란드 야콥스하운에서 열두 마리의 개가 끄는 썰매가 북쪽으로 출발했다. 썰매엔 네 겹의 천으로 된 텐트, 침낭, 50미터 자일, 석유난로, 등유 20리터, 낚시와 사냥 도구, 작살, 의약품과 약간의 식량이 실려 있었고 채찍을 쥔 서른 세 살의 동양인 남자가 타고 있었다. 는 이 썰매가 1976년 5월 8일 알래스카 코츠뷰에 도착할 때까지 18개월을 기록한 일기다. 남자의 이름은 우에무라 나오미(1941~1984)다. 본격적 여정이 시작된 첫날이 일기엔 이렇게 적혀 있다.

'어떻게 달려야 하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달린다.'

우에무라는 스물 아홉 살에 세계 최초로 5대륙 최고봉 등정에 성공한 일본인 등산가이자 탐험가다. 그는 뗏목 하나로 아마존을 탐험했고, 고비 사막을 혼자 걸어서 건넜다. 하지만 그런 타이틀은 내겐 그다지 매력적이 않다. 1984년 그가 매킨리산에서 실종돼 끝내 영원한 방랑자가 됐다는 사실도 특출한 감동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우에무라가 내게 매력적인 것은 다음과 같은 면모 때문이다. 책엔 단 한 줄의 문장으로 표현돼 있다. 아마도 이 문장의 알싸함에 취해, 나는 이 책을 몇 번씩 사서 읽고, 또 벗들에게 줬던 것 같다.

'도착점과 출발점 사이에는 방랑이 주를 이루었다.'

이 문장을 나는 이렇게 읽는다. 우에무라에게 방랑, 혹은 방황이란 모험을 시작해서 끝낼 때까지의 기간이 아니다. 하나의 모험을 끝내고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기 전까지의 시간이 오히려 방황의 시간이다. 그것은 역마살 따위의 어휘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인류를 진화시켜온 유전자 속의 어떠한 자성과 같은 것이다. 호모사피언스는 도전과 모험 속에서만 숨을 쉴 수 있는 척추동물이다. 일상과 모험, 또는 정주와 방랑을 전도시키는 순간, 키 160㎝가 겨우 넘는 이 일본인은 거인이 된다. 우에무라가 죽는 순간까지 모험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그가 인간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일푼으로 세계를 떠돌았다. 철저한 계획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이 책은 북극해의 경계를 따라 1만 2,000㎞를 서쪽으로 향해 가는 하루하루를 건조하고 담담한 언어로 기록하고 있다. 군데군데 얼음이 녹아서 지옥 같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북극해를, 썰매견의 발바닥을 피투성이로 만드는 툰드라를 건너는 것은 참혹하기 그지없는 여정이었다. 사람의 흔적을 발견할 가능성으로부터 수십 ㎞ 떨어진 바다의 한복판에서 개들이 우에무라를 남겨 두고 도망가 버리기도 한다. 몇 달째 해를 보지 못하는 흑야 속에서 그는 영하 55도의 추위와 지독한 고독을 마주한다. 그러면서 매일, 단 하루만 더 버텨보기로 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최악의 상황을 계산하기 시작한다. 남은 개 먹이는 3일분. 이것이 떨어지면 약한 녀석부터 잡아 나머지 개들에게 먹여야겠다. 그러고도 사람이 있는 곳에 도착하지 못하면 썰매를 버리고 걸어가자. 쓸모없는 녀석을 하루에 한 마리씩 잡아 일주일을 견디면 앞으로 열흘은 더 썰매를 끌 수 있다. 그 이후는 썰매를 버리고 남은 개를 잡아먹으며 간다고 가정할 때 열흘 이상 걸을 수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살아남아야 한다. 여기서 조난당해도 나를 구조하러 올 사람은 없다."(1976년 2월 8일)

책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우에무라는 목적지에 도착하고 개들은 휴식을 얻는다. 그 순간, 우에무라는 또 다른 모험의 시작을 예감한다. 도전 앞에서 또 다시 반복되는 일상을 택하고 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아등바등 하루하루 살면서 그것이 무엇을 위한 싸움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이 책은 작은 위안이 될는지 모른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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