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로 100일을 맞은 대통령직인수위 산하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전망이 그리 밝지 않은 것 같다(한국일보 2월 7일자 5면 보도). 정부 출범 이후에도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가동된다지만, 무엇을 얼마나 해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사회통합위원회가 뚜렷한 성과 없이 2년 여 만에 마무리된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역대 정부는 모두 통합을 추진했다.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저마다 시대적 의미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경우 산업화 근대화 민주화로 이행하는 과정의 갈등과 혼란을 거쳐 통시적(通時的) 시대통합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 12ㆍ19선거를 통해 국민이 반으로 딱 갈라져 있으니 어떤 정부보다 더 통합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은 세 가지다. 첫째, 갈등이 나쁘기만 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갈등은 통합을 저해하는 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갈등에는 사회를 분열시키는 역기능과 함께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순기능이 있다. 갈등은 나쁜 것이니 없애거나 잠재우려고만 한다면 여지없이 실패할 것이다. 좋은 정치는 갈등의 순기능이 발휘되도록 조정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의 공공토론위원회처럼 대통합위 산하에 사회적 갈등 관리기구 신설을 검토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발상이다.
둘째, 국민통합이 하나의 방향으로 국민들의 생각과 행동을 수렴하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개발독재시대가 아니며 소수의 엘리트그룹이 국가 발전을 주도하는 사회도 아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적으로 큰 나라이며 국민의식도 매우 높다. 위와 같은 차원과 방식의 통합이라면 가만히 있는 게 오히려 낫다. 여당의 생각 위주로, 새 정부의 국정 운영 편의에 맞게 국민을 조직화하고 이념의 통합을 기하려 한다면 반발만 부를 것이다.
셋째, 진정한 통합이란 소통과 관용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상호 배려하는 성숙한 사회를 이루는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자신과 다른 이념이나 생각, 정치적 견해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게 관용이다. 상대를 인정하면서 공정하고 건전한 경쟁을 통해 합리적 승부의 틀을 정착시키는 것이 진정으로 절실한 과제다. 장자가 맨 처음 쓴 대동소이(大同小異)라는 말은 크게 보면 서로 같지만 작게 보면 각각 다르다는 뜻이다. 대동은 기르고 키우고 소이는 가꾸고 지켜서 대동사회를 이루는 게 바로 통합 아닌가.
이런 세 가지 인식을 바탕으로 갈등에 대처하되, 박근혜 정부가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일은 국민의 먹이와 자리를 확보해주는 것이다. 돈을 잘 벌게 해주고, 돈 쓰는 것을 자유롭게 해주고, 일자리를 많이 창출한다면 '국민 대통합을 통한 국민행복'은 부르짖고 윽박지르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질 수 있다.
특히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못지않게 정당한 자리를 인정하고 보장해주는 인사가 중요하다. 통합은 사람을 잘 쓰는 데서 출발한다. 에 이런 말이 있다. "어떤 사람에 대해 곁에 있는 이들이 모두 어진 사람이라고 하고 대부들이 모두 어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쓰지 말라,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어진 사람이라고 하거든 그때 비로소 잘 확인한 뒤에 쓰라. (중략)곁에 있는 이들이 모두 죽이라고 하고 대부들이 다 죽여야 한다고 해도 죽이지 말라,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죽여야 한다고 하거든 그때 비로소 잘 확인한 뒤에 죽여라."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온 나라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귀와 장치가 있어야 한다. 온 나라 사람들과 소통이 돼야 하는 것이다. 대통합위원회의 활동이 중요한 게 아니다. 정당한 먹이와 자리가 확보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통합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통합은 결국 관용이며 소통이다.
임철순 논설고문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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