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석학 미셸 푸코는 1971년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우연히 피에르 리비에르라는 존속 살인범이 남긴 방대한 양의 수기를 발견했다. 농부 리비에르는 1835년 낫으로 어머니와 동생들을 잔인하게 살해해 체포된 뒤 구치소에서 자살한 인물. 미셸 푸코는 10여명의 학자들에게 공동연구를 제안해 라는 책으로 펴냈다. 학자들은 프랑스혁명 후의 사회상, 정신의학, 형사소송법 등 다양한 시각에서 입체적으로 사건을 분석했다.
■ 우리 사회에서 존속 살인이 주목 받게 된 계기는 1994년 100억대의 재산을 노리고 친부모를 살해한 '박한상 사건'이다. 당시만 해도 가족을 용의선상에 올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진술에 의문이 많았지만 미국 유학생인 부잣집 아들이 부모를 죽일 리 없다는 의견이 수사팀에서조차 다수였다. 친척들도 "불쌍한데 건드리지 말라"며 박씨를 끼고 다녀 경찰은 접촉에 애를 먹었다. 대구교도소에 수감 중인 그는 19년 째 사형수로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 전주시 일가족 살해사건 피의자인 둘째 아들의 범행 동기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피의자는 줄곧 "모두 죽는 것이 가족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보험금과 유산 등 50억 원대의 재산을 노렸을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피의자를 면담한 프로파일러는 심리적 원인에 무게를 둔다. 조사 과정에서 심한 강박증세와 불안증세를 보였는데, 권위적인 가정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설명이다.
■ 국내 존속 살인 발생 빈도는 외국에 비해 높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전체 살인 사건에서 존속 살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1~2%대인데 한국은 5%대다. 가해자의 절반 이상은 정신분열 등 이상심리 증세를 나타냈다. 유교적 전통은 사라지는데 자식들을 내 맘대로 하려는 욕구가 우리 가정에는 여전히 남아있다. 사회적인 억압과 좌절감이 가까운 가족에게 분출되는 경향도 나타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유독 빈번히 일어나는 한국만의 사회적 특성과 원인을 찾는 연구가 나와야 한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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