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삶과 문화/2월 8일] 밥을 나누고 말을 섞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2월 8일] 밥을 나누고 말을 섞고

입력
2013.02.07 12:01
0 0

주유소에 주유를 하러 가면 십대 남학생과 칠십대 할아버지가 동시에 뛰어와 기름을 넣거나 차 유리를 닦는다. 낮에 편의점을 가면 육십 넘은 할머니가 카운터를 보고 있고 새벽녘에는 스무 살 남짓한 여학생이 그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우리사회 안에 나이, 성별, 직업에 따라 서열을 매기던 관행이 확실히 깨졌다고 여기는 이가 있을까? 그 사람들은 모두 '알바생'이라는 동일한 이름으로 불리고 동일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고 말이다. 만약 그렇게 여기는 이가 있다면, 그 눈에는 남녀노소가 치열하게 일하고 있는 지금 여기 각종 삶의 현장이 얼마나 공평하고 자유로워 보이겠는가.

하지만 그런 현장의 진실은 우리사회에서 날로 확대돼 가고 있으며 여차하면 크고 작은 사건을 통해 터져 나오는 세대 간 경쟁 및 갈등이라는 문제다. 아들딸들이 아버지 어머니의 삶을 따르기는커녕 그 자체로 인정하는 일조차 드문 현실이다. 또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의 언행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하고 심지어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일도 일상적이다. 혹자는 고대 아시리아의 어느 비문에조차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굳이 지금 한국사회 세대 갈등을 꼬집어 심각하게 따질 일은 아니라고 넘겨버릴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단지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가 서로에게 느끼는 심리적 격차나 바라보는 관점의 차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서두에 예를 든 우리 생활의 단면에서처럼 세대와 세대가 서로를 이해하고 돕기보다는 각자의 형편 때문에 대립과 경쟁을 피하지 못한 채 힘겹게 공존해야 하는 구조적 현실에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 청년층에게든 중장년층에게든 똑같이 지속되는 고용 불안정, 집에서나 밖에서나 당연하게 시달리는 경제위기, 정권이 바뀌어도 개선될 기미조차 없어 보이는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구조. 그 속에서 사람들은 '어쨌든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심리로 무장한 채 살아간다. 해서 세대 간의 불통이 폭력으로 내달려도, 밑으로의 사랑과 위로의 존경이라는 관계 망이 완전히 흐트러져 버려도 그 위기를 짐짓 모른 척하며 각자 자기 이익에 노심초사한다.

세대 간의 괴리를 좁히고, 갈등과 경쟁의 현 세대관계를 위에서는 이끌고 아래에서는 지지하는 관계로 전환시키는 일은 경제제도 등 공적 사회체제가 맡아서 풀 과제고 의무다. 그렇지만 과연 그것으로 충분할까? 알다시피 김대중 정부부터 현재까지 지난 십 수 년 간 우리사회는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생존경쟁의 살얼음판을 걸어야 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만큼이나 그 부정적 효과를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 또한 부단히 도입해왔다. 구조조정으로 실업이 전 세대에 확대되자 실업급여제도를 확대했고, 노년인구가 급증하자 각종 출산율 장려 정책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인터넷에 올라오는 각종 고발 영상들, 예컨대 지하철에서 자리를 다투다 끝내 주먹질까지 한 노인과 청년의 영상 같은 것들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바 우리의 갈등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다.

곧 설 연휴가 시작된다. 매년 반복되고 어른들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마냥 즐겁고 편하지만은 않은 명절이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때만 되면 고향 앞으로 나서고 가족은 물론 주변사람들을 챙긴다. 밥상머리에 함께 앉아 밥을 먹고,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고, 어른들에게 세배하고 덕담을 들으며 짧은 며칠을 보내는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불편한 대화가 오가고 서운한 마음들이 교차하는 순간이 빈번하다. 하지만 살벌하기만 한 바깥 삶에서 어쩔 수 없이 날을 세워야 했던 세대들이 가족이라는 소우주 안으로 모이면 전혀 다른 관계 양상을 띤다는 점에 주목하자. 그 양상은 자폐적이거나 이기적인 가족 관계를 확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로 인해 우리 안에 새겨진 세대 간 경쟁과 갈등 관계를 풀 실마리가 돼줄 것이다. 배려와 존경으로 서로 밥그릇을 나누고 말을 섞는 그런 관계 말이다.

강수미 미술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학술연구교수

강수미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