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실력 있는 사람들이 참 많다. 지구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사람 우사인 볼트는 100m를 9초 63에 주파한다. 참 빨리 달린다. 언제나 훌륭한 연기로 짙은 감동을 주는 김연아는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여자 운동선수 7위에 뽑혔다고 한다. 참 대단한 실력이다. 지난 해 29조원이라는 경이로운 영업이익을 낸 삼성전자는 성과급 잔치를 벌인다고 한다. 실력 있는 임직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런 성과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실력과 성과를 보면서 시샘 어린 감동을 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실력 있는 사람이 마땅한 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승자독식 사회에 불만이 많은 사람조차도 사회적 부와 관직, 명예와 같은 희소자원은 실력과 능력에 따라 배분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사인 볼트가 부러우면 더 빨리 달리면 되고, 실력 좋고 얼굴도 예쁜 김연아가 샘이 나면 더 좋은 성과를 보여주면 된다. 이처럼 실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를 ‘실력사회’(meritocracy)라고 한다. 좋은 교육을 받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 사회의 지배계급으로 부상한 사회, 그것이 바로 실력사회이다.
실력과 능력은 우리 사회에서 과연 공정하게 평가되고 있을까? 평가에는 기준이 있게 마련이다. 기준이 명확하고 과정이 투명하다면 능력 평가는 대체로 공정하게 이루어진다. 단거리 경주에서 휘슬이 울리기 전에 먼저 뛰어나가면 실격처리 되고, 피겨 스케이팅에서도 주어진 기술요소를 잘 처리하지 못하면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아무리 좋은 인품을 갖추었더라도 실적을 내지 못하면 좋은 CEO로 평가받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영역들은 각각 다른 실력을 요구하고, 그 실력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도 제각각이다. 달리기 잘한다고 피겨 스케이팅 잘하는 것이 아니고, 인기 있는 선수라고 기업경영 잘하는 것이 아니다. 실력이 제각각인 수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살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치인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최근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의 자진사퇴와 관련하여 공직자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는 인사청문회 제도에 관한 말들이 많다. 어떤 사람은 그 정도 지위까지 오른 사람치고 백로처럼 흠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반문한다. 도덕성만 가지고 따지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라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직접 나서 ‘신상 털기’식 인사청문회 제도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신상에 대한 문제는 비공개로 검증하고, 공개 검증은 정책과 업무능력 위주로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이 나서지 못하면 결국 그 피해는 국민이 입는다”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솟구치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다.
김용준 후보자는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지냈으니 능력 있는 법조인에 틀림없을 것이다. 우사인 볼트가 단거리 경주에서, 김연아가 피겨 스케이팅에서, 이건희 회장이 기업경영에서 뛰어난 것처럼 그는 법조계에서 뛰어난 인물이다. 그렇지만 뜀뛰기 잘하고 인기가 좋고 돈이 많다고 정치를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한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사람이 기준이 전혀 다른 영역에서도 실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똑똑하다고 반드시 도덕적이지는 않지 않은가?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실력사회’는 한 영역에서 인정받은 실력과 능력을 바탕으로 다른 영역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모든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정치는 전혀 다른 능력을 요구한다. 막스 베버는 직업정치인이 갖춰야 할 자질로 세 가지를 꼽는다. 개인의 권력보다는 국민 전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책임의식’, 국민의 고통을 자신의 문제로 여기는 ‘열정’, 이해관계에 거리를 둘 수 있는 ‘균형감각’. 이것이 공직자에 대한 도덕성 검증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그런데 이 문제는 비공개로 검증하고 업무능력만 보잔다. 이력서에 기록된 능력만 드러내고 도덕적 자질은 숨기고 싶은 실력사회의 실력행사를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영 좋지 않다. 민주사회의 미래가 걱정된다.
이진우 포스텍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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