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느 해, 대학로에 있던 출판사에 근무하던 봄날의 일이다. 점심을 먹고 느긋한 산책을 하다가 방송대 교정으로 들어섰다. 교정에는 갖가지 봄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었던 것이다. 교내 우체국 앞을 지날 때, 택배용 탑차가 한 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탑차를 가까이에 끼고 스치듯이 지나갔는데, 그때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장면을 보고 말았다. 그 좁은 운전석에서 왜소한 몸집의 젊은 운전기사 하나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몹시 조급한 표정으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밖은 약 먹은 꿈속처럼 환한 봄날이고, 햇볕은 알맞게 따뜻하고, 우체국 옆의 목련나무는 마술을 부리듯 하얀 꽃들을 펑펑 터뜨리고 있었다. 그런데 기껏해야 스물여덟이나 아홉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젊은 청년은, 운전석에서 몸을 숨기고 마치 숭고한 의무라도 되는 양, 어떤 의식이라도 치르는 양 필시 손수 준비했을 도시락을 입안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는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왜 갑자기 삶이 견딜 수 없이 민망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난 그의 점심 식사가 그 어떤 파티의 오찬보다도 즐겁고 유쾌한 것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서둘러 한가로운 봄날의 산책을 마쳤다. 그리고 며칠 후 일상의 틈에서 발견한 그 작은 풍경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먹고 사는 제 몸을 숨겨야만 하는 영혼은 얼마나 순정하고 애틋한 것인가를.
김도언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