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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하고 호사스러운'시카고 사운드' 청중 눈높이 이상으로 끌어올린 마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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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하고 호사스러운'시카고 사운드' 청중 눈높이 이상으로 끌어올린 마젤

입력
2013.02.0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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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최고령 지휘자 중 한 명인 로린 마젤(83)은 6일 밤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CSO)와의 공연을 앞두고 "시카고 사운드에 귀 기울여 달라"고 한국 팬에게 당부했다. 자신은 주인공이 아니라는 겸손의 말인 듯했다. 마젤은 독감에 걸린 CSO의 음악감독 리카르도 무티(72)를 대신해 예정에도 없이 한국을 찾았다.

그의 말대로 '시카고 사운드'는 듣는 이의 가슴을 뛰게 했다. 두텁고 기름진 현을 기반으로 단단히 뭉친 관의 울림은 대리석 건축물처럼 육중하고 견고했다. 악기별로 옹골진 덩어리의 사운드는 경계선을 남기지 않으며 하나로 뭉쳤다. 프리츠 라이너나 게오르그 솔티 등 거장들이 조련한 치밀한 앙상블은 명불허전을 실감케 했다.

하지만 이같이 호사스런 사운드를 청중의 눈높이 이상 끌어올린 건 절대적으로 마젤의 지휘봉이었다. 마젤은 철저히 자기 해석 안에서 그 사운드를 통제했다. 라이브 공연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는, 이날도 악보에 얽매이지 않고 음의 시가를 조절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감정을 분출하면서 어떻게 하면 청중이 곡의 재미를 느낄지 정확히 맥을 짚었다.

첫 곡인 모차르트의 마지막 교향곡 41번 '주피터'는 지휘자의 주관이 결집됐다. 잰걸음의 담백한 해석이 주류로 자리잡은 21세기에 이처럼 낭만적이고 장엄한 '주피터'를 듣는 건 놀라운 일이다. 연습 시간이 부족했을 터인데 CSO의 반응력은 놀라웠다. 현악 주자들은 활을 최대한 사용해 멜로디를 꼼꼼하게 새기며 노장이 요구한 느린 템포를 구현했다.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은 건 적절한 완급 조절 덕분이다.

이날 메인이었던 브람스 교향곡 2번에서도 대중적인 호소력은 객석을 압도했다. 진한 수묵화처럼 첼로가 꾹꾹 눌러서 그린 1악장의 두 번째 단조 멜로디, 낙차 큰 다이내믹으로 밀고 당김을 구사한 전개부, 한껏 감정을 이입한 2악장 클라이맥스. 음반으로 들었다면 '신파'로 치부했을지 모르지만 실연에서는 솟구치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작곡가가 19세기 독일 청중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게 바로 이런 음악이 아닐까. 금관이 작렬한 4악장도 처음부터 끝까지 객석을 들었다 놨다 했다. 환희에 찬 코다(coda) 직전에 끓어오르듯 악곡을 고조시키는 솜씨는 대단했다.

첫 번째 앙코르인 브람스 '헝가리 무곡' 1번의 엄청나게 느린 중간부도 지휘자의 개성을 고려할 때 이상할 것이 없었다. 고난도의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 3막 전주곡을 마지막으로 연주하면서는 '쇼맨십'의 절정을 보여줬다.

이들은 내한 이틀째인 7일엔 베르디 '시칠리아의 저녁기도' 서곡, 멘델스존 교향곡 4번 '이탈리아', 베토벤 교향곡 3번을 연주했다. 마젤은 4월에도 자신이 음악감독으로 있는 뮌헨 필을 이끌고 내한한다.

이재준ㆍ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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