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바닷가에 가서 날아가지 않은 해국(海菊) 씨앗을 훑었다. 손에 쥐고 있으면 열이 나는 해국 솜털 씨앗을 종이에 접었다. 어딘가 숨겼다 울밑에 골을 파고 묻고 싶었다. 집 주위에 꿀벌들이 윙윙거리는 가을날을 상상해보았다. 핸들을 쥔 손안에 해국 씨앗을 접은 종이가 잡혔다. 그날따라 집까지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주차를 하다 소집에서 나오는 아버지와 마주쳤다. 연락도 없이 찾아온 아들을 위해 아버지는 웃음을 준비했다. 미안한 아들은 바닷가에서 훑어온 해국 씨앗을 내밀었다. 해국 씨앗입니다. 봄이 오면 심으라고 바닷가에서 훑어왔어요. 나는 말을 얼버무렸다. 쪽문 옆 우체통에 해국 씨앗을 넣은 아버지가 말했다. 씨앗은 봄에 묻어야 해. 아버지만큼 씨앗을 많이 묻은 사람도 드물 것이었다. 일 욕심이 많은 아버지는 해마다 땅을 늘려 농사를 지었다. 추수가 끝나면 바다 일을 나갔다. 겨울엔 김 양식을 해서 지게를 지고 나가 김을 뜯어왔다. 눈비가 오지 않으면 쉬는 날이 없었다. 몸살이 나서 끙끙 앓다가도 날이 밝기 전에 밖으로 나가 돌아다녔다. 하루라도 쉬면 큰일이 나는 사람이 아버지였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우체통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잘 통해야 발아율이 높은 게 씨앗이었다. 우체통에는 꽃씨들이 봉투에 담긴 채 겨울을 나고 있었다.
올해까지만 농사를 짓고 그만 둔다는 게 벌써 몇 년째인지 몰랐다. 열네 살 때부터 금광(金鑛)에 다닌 아버지는 진폐증을 달고 살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쁜 데도 농사일을 그만 두지 못했다. 그까짓 거 한나절이면 처 부수겠지. 언제 일을 다 끝내냐는 내 말에 아버지가 하는 대답이었다. 일을 하기도 전에 겁부터 내는 사람은 농부가 아니었다. 우체통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버지가 한쪽 다리를 절면서 쪽문으로 나왔다. 추운데 어서 들어오지 않고 뭐하냐고 핀잔을 주었다.
40대 중반을 넘긴 아들과 식탁에 앉은 아버지가 말을 꺼냈다. 어려서부터 일을 해보니 근력이 붙어 가장 일하기 좋았던 게 40대였다는 거였다. 아버지는 웃으며 너도 그렇지 않느냐 묻고 있었다. 나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수긍하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다시 말을 꺼냈다. 금광에 같이 다닌 사람 중에는 내가 가장 오래 살았어. 일을 그만 뒀으면 골방 노인네처럼 바싹 늙었을 거여. 약봉지를 식탁 구석으로 밀어붙인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싶었다. 트고 갈라진 굳은살들이 농사꾼의 집념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수기 물을 받아 마신 아버지가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사람들이 그랬잖여. 폐암이라 몇 달 살지 못할 거라고. 그런데 그 사람 몇 년을 더 버티고 갔잖여. 당장은 몸이 힘들어도 하던 일을 계속 해야 하는 겨. 항암치료나 받으러 다니면서 누워있었으면 몇 달도 버티지 못하고 갔을 겨. 일을 해야 힘이 생기고 병과도 싸울 수가 있는 겨. 아버지의 말을 듣는 동안 나는 꾀를 피우며 살아온 지난날들이 부끄러워졌다.
여름날 뙤약볕에서 노랗게 익은 담뱃잎을 따 리어카에 싣고 집으로 가는 폐암 말기의 농부를 보았다. 까맣게 마른 그는 농부라서 밀짚모자를 쓰고 토시를 끼고 장화를 신고 있었다. 간신히 리어카를 집 안으로 들인 농부는 마루에 누워 잠이 들었다. 물에 만 밥을 떠먹은 그가 안마당에 불을 밝혔다. 담뱃잎을 엮어 비닐하우스에 널고 있었다. 이까짓 거, 이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과 싸우는 사람이었다.
농사일을 하기 싫어 다락방에 올라가 니체를 읽었다. 말을 하는 대신 모든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농부의 삶이었다. 진정한 농부의 삶이 니체의 삶과 비교해 못할 것도 없었다. 체험을 통해 행동하는 농부의 삶은 자신의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의지는 정신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씨앗이 품고 있는 미래를 상상하는 일 또한 농부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비닐하우스에 들어갔다. 올해부터 농사를 짓지 않겠다는 말과는 달리, 벌써 모판에 상토를 넣고 뿌리를 틔운 고추씨를 심었다.
이윤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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