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민권자라도 알카에다와 연계됐다는 혐의가 있으면 사살해도 된다는 내용의 미국 법무부 비밀 문건이 유출돼 파문이 일고 있다.
NBC방송은 5일 미국 정부가 미국인을 합법적으로 살해할 수 있는 근거가 기술돼 있는 16쪽 분량의 법무부 문서를 공개했다. 문서는 "사법부의 의견으로는 국가에 임박한 위협을 가하려는 미국인을 대상으로 정부가 사살작전을 펴는 것은 국가안보를 위한 정당방위이며 암살 금지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또 "이런 사람들에 대한 조치를 늦추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임박한 위협의 개념을 더 확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장 논란이 되는 대목은 '임박한 위협'이 무엇인지를 정의한 부분이다. 문서에 따르면 위협 여부를 판단할 때 용의자가 구체적인 테러계획을 세웠다는 증거는 필요 없으며 '사안에 정통한 고위급 관리'가 위험 인물이라고 여기면 합법적으로 사살할 수 있다. 또 정부의 사살작전이 적법한지 여부를 평가할 사법절차도 필요없다고 밝히고 있다.
문서가 공개되자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법무부를 제소했다. 이 단체의 법률 책임자 자밀 재퍼는 "암살에 대한 초법적 권한을 주장하는 문건"이라며 "정부의 대테러 정책이 무모하고 또 테러위협에 무방비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비난했다. 다른 관계자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나온 문서라는 것을 믿기 어렵다"며 "매우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알카에다 지도자 안와르 알올라키 사살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됐다. 2011년 예멘에서 미국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알올라키는 미국 시민권자였다. 파문이 커지자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드론 공격은) 미국의 헌법과 법률을 따른 것"이라며 "현재와 미래의 위협을 제거해 미국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드론 공격이 필요했다"고 반박했다.
문서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드론 작전을 지휘, '암살 황제'로 불렸던 존 브레넌 중앙정보국(CIA) 국장 지명자의 인준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공개됐다. 언론들은 이 문서가 몰고 올 논란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의 고위직 인선에 또 다시 빨간 불이 켜졌다고 전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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