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7번방의 선물'은 착하고 따뜻한 영화다. 위스키나 와인처럼 세련됐다기보단 막걸리처럼 푸근하며 보다 서정적인 느낌이랄까. '7번방의 선물'의 이환경(43) 감독을 최근 서울 홍대앞에서 만났을 때 그의 인상이나 말투도 딱 그랬다.
말과 인간의 교감을 그린 '각설탕' '챔프'의 성적이 신통치 않았던 그는 이번 영화가 대박 행진을 걷자 날아갈 듯 기분이 좋다고 했다. '7번방의 선물'은 개봉 2주만에 450만명을 넘어섰고 계속 순항하고 있다.
"'챔프'를 했던 제작사와 이번 영화도 함께 했어요. 그때 빚을 많이 져 미안했는데 보기 좋게 갚을 수 있게 돼 너무 좋아요. 영화 속에 기적 같은 일들을 많이 그렸는데 그 기적 같은 일이 현실에서 저에게 일어난 것 같아요."
그의 영화엔 어린 아이가 빼놓지 않고 등장한다. "아이를 키울 때 일 때문에 많이 소홀했어요. 영화를 통해 아이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 애비된 도리가 아닐까 싶어요. 남들은 흥행하기 힘든 가족영화 그만 만들라 하지만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죠. 가족의 마음을 관통해 끄집어내는 뭔가가 있을 것이고 그 접점을 찾고 싶었어요. 이번에 실패했으면 영화를 못 만들 것 같아 더욱 이를 꽉 깨물고 작업했어요."
감독은 범인을 검거하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7번방의 선물'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집 앞에서 형사에 잡힌 범인이 혼자 남은 어린 딸아이에게 몇 마디 일러주고 싶다 며 방에 들어가요. 아빠가 '이 삼촌(형사)하고 지방 가는데 혼자 학교 갈 수 있겠지'하고 물어요. 그 딸이 '불 켜고 자면 안무서워' 하대요. 그 아빠는 결국 연행돼 형을 살아야 할 텐데 눈물이 울컥 했죠. 혼자 남은 딸아이는 어떻게 살고, 두 사람은 얼마나 서로를 그리워할까 생각한 것이 시나리오의 근간이 됐어요."
이 영화는 '레미제라블'과 함께 더불어 '힐링 영화'로 꼽히고 있다. 감독은 자신부터 힐링 받았다고 했다. " '챔프'때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해 마음이 많이 피폐했어요. 모든 걸 포기하려다'7번방의 선물'을 한땀한땀 만들어가며 강퍅해진 마음을 다스렸죠. 딸과 아내는 이 영화가 머리로만 만든 게 아니라 제 가슴으로 만든 거라 얘기해줘요. 더없이 소중한 경험이죠."
이제 열한 살이 된 딸에게 편집본을 보여주니 "왜 아빤 슬픈 거만 만들어"라고 물었다고 한다. "영화를 보고 나니 아내는 굴비를 구워주고 딸은 강판에 과일을 갈아서 갖다주더라고요. 고맙다면서. 그게 제일 뿌듯해요. 사실 영화엔 갓 태어난 제 아들도 나와요. 초음파 사진 속 태아요. 이 영화는 제 가족사진 같은 거예요. 가족사진을 허투루 찍을 수 없잖아요. 그 마음을 관객들이 읽어준 것 같아요."
그가 만든 영화 속 여자아이는 모두 실제 자신의 딸인 예승이란 이름으로 나온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그러고 싶단다. "이번 영화가 흥행하면서 딸아이가 주위로부터 주목 받으며 조금 불편해졌나 봐요. 다음에 쓸 때는 딸의 허락을 받아 쓰려고요. 이름을 영화에 투영시키는 것엔 딸이 저렇게 자라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박신혜가 연기한 성인 예승이처럼 아빠를 위해 변론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과 강단을 지닌 바른 여인으로 컸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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