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방(立春榜) 붙였는데도 설한풍 여적 매섭다. 알뿌리가 제법 튼실한 겨울이다. 추운 건 그럭저럭 버틸 만하다. 그런데 도시의 때깔이 영 마뜩잖다. 하늘에서, 아스팔트 위에서, 사람들의 낯빛에서, 이젠 텁텁한 잿빛, 혹은 더러운 갈색으로 질척거리는 눈(雪). 겨울은 속히 가줬으면 싶은 객처럼 눈치 없이 미적거리고 있다. 해서, 객 대신 내가 자리를 뜬다. 제주로 가보기로 한다. 하마, 거긴 봄이지 않을까.
죄인의 뜰에 꽃이 피다
서귀포시 대정읍, 아니 19세기 대정현(縣)이 이번 여행의 목적지다. 대정은 유배의 고을이다. 유배(流配)는 왕조 시절 오형(五刑)의 하나로 요새로 치면 징역형이다. 기한이 따로 없으므로 해배(解配ㆍ사면)의 명(命)만을 바라는 무기징역이다. 조선은 명나라의 법을 좇았다. 대명률은 유(流) 일천리(里), 유 이천리, 유 삼천리 등 죄의 경중에 따라 유배의 등급을 매기고 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기껏 팔백여리인 조선에서 제주도 대정현은 일천리 하고도 이백여리를 더 채울 수 있는 절해고도 유형의 땅이었다. 궁으로부터 가장 멀리 내쳐지는 죄인이 여기에 왔다. 그 죄인의 뜨락에 조선에서 가장 이른 봄꽃이 핀다.
공항에서 나와 대정으로 차를 몰 때만 해도 아직 이르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그러나 꽃은 이미 만개해 있었다. 수선화. 제주의 수선화는 1월 말 꽃을 피우기 시작해 3월까지 청초한 자태를 지킨다. 이 식물에겐 개화라는 말이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다. 하얗고 노란 꽃잎의 색채만큼, 꽃대를 받친 몸통의 시푸른 채도가 강렬하기 때문이다. 수직으로 뻗어오르는 그 씩씩함은 꽃대궁 윗부분에 매달린 화사함에 뒤지지 않는다. 수선화는 꽃만이 아니라 몸 전체로 봄을 틔워낸다. 대정의 골목골목, 거뭇한 현무암으로 둘러친 바람벽마다 키 작은 수선화가 뿜어낸 봄향기가 아득하게 고여 있었다.
대정에 유배됐던 죄인은 많으나 오늘날 대정이 유배지로 기억되는 건 추사 김정희(1786~1856) 때문이다. 헌종 6년(1840), 추사는 대정으로 유배된다. 이미 생의 부침을 겪을 만큼 겪은 쉰다섯살이었다. 그리고 여덟 번의 봄을 여기서 맞는다. 절해고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된 죄인에게 잡초처럼 피어나는 수선화는 역설이었을 것이다. 수선화는 본래 중국 강남 지방이 원산지인 꽃으로 추사가 20대 시절 수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인들 사이에 수선화 재배 붐이 일었는데, 추사도 그 도락을 멀리하지 않았다. 문집엔 그가 다산 정약용(1762~1836)과 수선화를 나누는 글도 남아 있다. 그 귀한 수선화가 유배지에서 아무렇게나 피어나는 모습에 어찌 감흥이 없었을까.
'한 점 겨울 꽃이 떨기마다 둥글게 피었으니/ 그윽하고 담담한 품격에 둘레는 차갑고 빼어났네/ 매화는 고상하기 하지만 뜨락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맑은 물에서 참 모양, 바로 해탈한 신선일세'(김정희 시 '수선화')
추사를 따라 돌담길을 걷다
대정에 남은 추사의 흔적을 따라 2011년 '추사유배길'이 열렸다. 제주에 그가 머물렀던 그대로의 집은 없다. 다만 기록이 상세히 남아 있어 정확한 터를 알 수 있다. 추사가 죄인의 몸으로 웅크려 지내던 자리는 현재의 주소체계로 대정읍 안성리 1661번지 일대다. 그의 유배생활을 재현해 둔 추사적거지 곁에 2010년 새로 제주추사관이 건립됐다. 세 가지 코스로 나뉜 추사유배길의 1, 2코스가 여기서 시작된다. 글씨와 그림을 비롯해 추사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유물, 제자와 지인들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1코스 이름은 '집념의 길'이다. 추사에게 유배는 자신의 학문과 예술을 닦는 시간이었다. 고독하고 고집스럽고 고난으로 점철됐을 그 시간의 기억을, 훗날 추사는 "나는 칠십 평생에 벼루 열 개를 갈아 없앴고, 천 자루의 붓을 닳게 했다"는 말로 갈음했다. 1코스엔 먼저 대정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동계 정온(1569~1641)을 기리기 위해 추사의 건의로 세운 유허비, 추사와 관계가 각별했던 정약현(정약용의 형)의 딸 정난주 마리아의 묘, 추사가 '의문당(疑問堂)'이란 편액을 써 준 대정향교 등이 흩어져 있다. 대정은 관광지라기보다 한적한 농촌에 가까워서, 돌담길 따라 마주치는 170년 저쪽 추사의 흔적이 무척 소담하다.
2코스 '인연의 길'은 제주추사관에서 북쪽 중산간을 향해 뻗어 있다. 코스 이름과 달리 추사와 직접적인 인연이 닿는 유적은 없다. 대신 이 길엔 추사가 숱한 글과 그림에서 남긴 이야기의 소재들을 만날 수 있다. 그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타낸 과일이나 꽃, 차 등에 대한 관심을 떠올릴 수 있는 장소들이 점점이 이어져 있다. 감귤밭, 구억리 매화마을, 서광 승마장, 오설록 차밭 등이 그것이다. 추사의 흔적이 아니라 추사의 생각을 따라 걷는 길인 셈이다.
마지막 코스 '사색의 길'은 대정향교부터 또 다른 유배지인 창천의 안덕계곡까지 이어진다. 산방산을 남으로 끼고 밭두렁을 따라 걷는 길의 호젓함이 매력. 추사의 전각이나 아호들을 새긴 뭇♣見?중간중간 만나게 된다. 길은 제주올레와 겹치다가 갈라지길 반복하는데, 먼저 예쁜 길을 골라서 차지한 올레를 피해 가려는 안쓰러운 노력이 엿보여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한참 걷다, 수선화와는 또 다른 빛깔의 봄을 만났다. 유채꽃이다. 보랏빛 적채밭 가운데 무리지어 핀 노란색의 대비가 강렬했다. 제주의 봄빛이 이미 아찔할 만큼 짙었다.
● 참고 양진건
[여행 수첩]
●대중교통을 이용해 추사유배길 출발점인 제주추사관(064-760-3406)에 가려면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평화로 노선 버스(신평, 보성행)을 타고 추사유배지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서귀포 터미널에선 서일주 버스를 타고 인성리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마을을 도는 1코스엔 편의시설이 많지만 2, 3코스를 걸을 땐 물, 간식 등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1ㆍ2코스 각각 약 8㎞, 3시간 소요, 3코스 약 10㎞, 4시간 소요. ●제주옹기박물관(064-792-7955)에 추사유배길 정보센터가 있지만 현재 이전 준비 중이다. 제주 구억매를 볼 수 있는 노리매공원(064-792-8211), 제주 녹차 재배지 오설록티뮤지엄(064-794-5312)이 2코스에 있다. 제주유배길 www.jejuybae.com
제주=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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