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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2월 7일] 눈이 오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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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2월 7일] 눈이 오고 계시다

입력
2013.02.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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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 지났다. 많은 눈이 내렸지만, 올해에도 어김없이 봄이 오긴 올 모양이다. 쌓인 눈이 녹아 질퍽이는 날씨에도 설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전에 없이 따뜻하고 분주하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 그간 잊고 있었던 지인이나 가족, 친지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정과 사랑을 전하기 위해, 조촐한 선물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 명절이 부담스러워 주부들의 근심이 는다. 두둑한 보너스를 채워주지 못해 아버지의 등이 더욱 굽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도 오랜만에 보게 될 부모님과 가족들의 얼굴이 벌써 떠올라 잠시 생긴 시름을 물러가게 만든다. 이런 모든 것이 설이 주는 소박한 행복이겠거니, 사람들은 명절을 앞두고 설렌다.

허나 명절이 괴로운 사람들도 많다. 고향에 가기 어려운 사람들, 피치 못할 이유로 가족과 멀리 떨어져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 설날에도 일을 해야 하는 쉴 수 없는 사람들, 우리 주변에 많다. 곰곰 생각해보면 명절은 꼭 필요한 사람에게서만 멀어져 있는 느낌이다.

지난 1일, 7년 동안이나 사측의 부당해고에 맞서 농성 중이던 부평의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쫓겨났다. 콜트·콜텍은 세계 기타시장 30%를 점유하는 기타와 음향기기 분야 유망 중소기업이었다. 하지만 사측은 2006년 한 해 8억5,000만원의 적자를 봤다며 2007년 4월 노조 조합원 160명 중 59명을 해고했고, 이듬해 8월에는 부평공장을 폐쇄하며 나머지 조합원을 전원 해고했다. 악기 제조 물량은 인도네시아 등 해외공장으로 옮긴 뒤였다. 이후 최근 공장은 폐업 조치되어 공장 건물과 부지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상태였지만, 부당 해고된 노동자들은 복직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악기를 만드는 특수한 환경의 노동자들의 부당 해고에 문화연대 등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다른 사업장과는 달리 큰 관심을 가지고 연대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삭막했던 농성장은 어느새 놀이터로 변했다. 특히 음악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치는 기타에서 흘러나오던 아름다운 선율이 노동자들의 피맺힌 절규와 한이 섞인 것이라는 것을 안 뒤에는 씁쓸한 마음을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십수 년 생애를 바쳐 일한 사람들에 대해 몰인정한 사측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은 마음이 모여 콜트·콜텍을 놀이터로 만들었을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7년이라는 긴 시간 콜트·콜텍이 아름답게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모인 씁쓸한 마음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1일, 길고 길었던 농성현장이 경찰에 의해 단 십 분 만에 철거되었다. 서울, 경기중부에 폭설이 내린 날이었다. 밤새 진눈깨비 같은 가는 눈발이 쉬지 않고 밤을 밝혀 내리던 날이었다. 노동자와 활동가들은 다음 달 다시 건물을 재점거 했고, 나흘이 지난 5일, 13명이 경찰에 연행되면서 농성장은 철거되었다. 이 날도 눈이 내렸다. 사람들은 간혹 흩날리는 눈발에도 종종걸음으로 명절에 가족과 나눌 음식을 장보느라 부산했다. 대형마트마다 설 선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며칠 하염없이 내리는 눈보라 속에 그들이 있었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한 사람들이 내리고 있었다. 눈은 하늘에서 내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바람을 타고 저 남쪽에서부터 오고 있었다. 평택의 쌍용자동차 송전철탑에서 눈이 오고 있었고, 울산의 현대차 비정규직 철탑농성장에서 바람을 타고 서울로 북진 중이었다. 부평의 콜트·콜텍을 거쳐 시청 앞 재능교육과 대한문에서 눈이 오고 있었다. 남쪽에서부터 바람을 타고 오는 눈, 우리 가족의 그리움 가득했던 가족의 얼굴이 오고 있었다. 명절에 가족들과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설움의 눈이 오고 있다. 이 와중에 한 사업장에서는 조합원들이 없는 설 연휴 사이에 농성장을 철거해달라다는 요청을 했다고 한다. 명절은 나누는 것인데.

백가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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