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민수(가명)는 누구도 손댈 수 없는 무법자였다. 욕을 하는 건 기본이고, 다리가 불편한 친구에게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참다 못한 같은 반 경미(가명)가 지난해 10월 117 학교폭력신고센터에 민수를 신고했다. 1년 전 정부가 발표한 학교폭력근절종합대책에 따라 학교폭력전담기구가 꾸려졌고, 민수는 학교폭력 가해자로 몰렸다.
전담기구의 상담교사였던 송모 교사는 민수와 민수에게 괴롭힘을 당해온 학생들이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게 대화모임 '회복적 서클'을 열었다. 민수는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을 친구들을 통해 듣고 보면서 부끄러워했다. 평소 벌을 받아도 웃던 민수는 대화모임 후 그런 행동을 자제하려고 노력 중이다. 송 교사는 "문제 아이를 발각하고 처벌하면 당장 학교폭력 문제가 끝난 것같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아이들 스스로 이해하고 용서하며 공동체가 다시 이 아이를 받아들이는 관계 회복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6일 정부는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등의 학교폭력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엄벌주의로는 학교 내 갈등을 풀 수 없다면서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교사들이 있다. 중도 성향의 교사 모임인 좋은교사운동이 벌이고 있는 '회복적 생활교육'은 회복적 서클, 교사ㆍ학생간 비폭력대화, 평화감수성 교육, 또래조정자 훈련 등 깨진 관계의 회복에 초점을 맞춰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지금까지 400여명의 좋은교사운동 회원들이 워크숍을 받아 자신이 소속된 학교에 적용하고 있다.
효과는 놀라울 정도다. 지난해부터 회복적 생활교육을 적용하고 있는 경기 고양시 덕양중에서 아이들의 변화가 눈에 띄었다. 2학년 현우(가명)는 욱하는 성질 탓에 반 분위기를 흐리는 '힘든 아이'였다. 성기를 발로 차는 등 친구들을 괴롭혀 현우 때문에 열린 대화모임만 총 3번이다. 대화모임에서 그저 장난으로만 생각했던 자신의 행동에 친구들이 심한 고통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 현우는 같은 장난을 반복하지 않았다. 화가 났을 때는 책상에 엎드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회피하지 않고 스스로 대화모임을 열어달라고도 한다.
김영식 덕양중 교사는 "아이들 스스로 대화모임을 열어 문제를 해결하는 등 교사의 개입 없이 해결하고 관리하는 능력이 생겼다"며 "처벌을 하지 말자고 하는 게 아니라 당사자가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지고 그 책임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숙영 좋은교사운동 교육실천위원장은 "친구, 교사와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는 가운데 폭력의 형태로 분출되는 관계의 단절이 학교폭력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단순히 가해 학생을 처벌하고 격리 조치해 드러난 갈등을 봉합시키기보다 당사자간 화해와 교육공동체의 회복을 달성해야 학교폭력이 해결된다"고 설명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