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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뺑소니 피해 한 풀어준 화상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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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뺑소니 피해 한 풀어준 화상재판

입력
2013.02.0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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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쏘리."

지난달 29일 오전7시30분(현지시각 1월 28일 오후4시30분) 지구 반대편 중남미 코스타리카의 재판정에 있는 뺑소니 피의자 A(66)씨의 사과가 서울중앙지검 1404호 홍석기 검사실의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흘러나왔다.

"저한테 사과하기보다 하늘 나라에 있는 우리 아기한테 진심으로 사과하세요."

뺑소니 가해자의 자백과 진심 어린 사과를 듣기까지 3년 넘는 세월을 보낸 어머니 전모씨는 눈물을 흘리며 답했다. 그는 컴퓨터 모니터 위에 설치된 웹 카메라에 해외에서 불의의 사고로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낸 어린 딸 예진이(가명)의 사진을 들이댔다.

끔찍한 악몽이 일어난 날은 2009년 11월 3일. 국내 대기업의 코스타리카 주재원의 부인인 전씨는 당일 아침 코스타리카 산호세 인근 한 위성도시의 외국인학교에 딸을 등교시키던 중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차량이 인도로 돌진,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던 예진이를 덮쳤다. 예진이는 30여m를 튕겨나갔지만 차량은 곧바로 도주했다. 뇌사 상태에 빠졌던 예진이는 일곱 살 생일날인 11월 7일 엄마 곁을 떠났다.

범인을 잡고 보니 캐나다 국적의 여성 A씨. 코스타리카 검찰은 전씨의 증언에 따라 A씨를 기소했지만 코스타리카의 여러 사정으로 재판진행은 더디기만 했다. 이 와중에 예진양 유족은 끔찍한 기억을 잊기 위해 사고 몇 개월 뒤 한국에 돌아왔다. 재판진척을 위해 예진양 유족들의 요청으로 코스타리카 주재 한국 영사와 법무부가 현지 재판부에 화상재판을 요청했지만 시큰둥한 반응만 돌아왔다. 1년여에 걸친 끈질긴 설득 끝에 현지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이날 국제 형사사법 공조를 통한 우리나라의 첫 화상재판이 홍 검사의 방에서 열린 것이다.

이날 화상재판은 '스카이프'란 화상채팅 프로그램을 통해 이루어졌다. 효과는 컸다. 범행을 부인하던 A씨는 유일한 목격자인 전씨의 증언이 화상 카메라를 통해 코스타리카 현지 법정에 전달되자 결국 범행을 자백했다.

이는 홍 검사가 전씨가 증언을 시작하기 전 2시간여 동안 재판정 내의 코스타리카 검찰과 화상채팅을 통해 협의를 거친데 힘을 입은 바도 크다. 현지 검찰은 홍 검사에게 A씨가 범행을 자백하고, 합의금을 준다면 전씨가 재판부에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전씨 등 유족은 피고인의 진심 어린 사과를 전제로 이를 받아들였다. 결국 A씨는 미화 2만 달러를 유족에게 지급하는 조건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 받았다.

홍 검사는 "해외에서 우리 국민 누구나 사건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화상재판을 위한 전문 시설을 마련하고, 운영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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