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9월 현대자동차는 충격에 휩싸였다. 급격한 원화가치 상승(원ㆍ달러 평균 환율 2005년1,011원→2006년 929.8원)으로 사상 처음 일본 도요타와의 경쟁차종 대비 미국 판매가격(현대 베르나 1만2,565달러ㆍ도요타 야리스 1만1,925달러)이 역전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몽구 회장의 강력한 지시로 900원대 환율에서도 생존 가능한 원가절감 조치와 현지 부품조달 확대 등에 노력한 결과, 그 해말 전년(1조3,841억원)과 비슷한 1조2,344억원의 영업이익을 낼 수 있었다.
# 국내 굴지의 정유회사 홍보담당 임원 A씨는 요즘 모처럼 편하게 지낸다.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ℓ당 2,100원을 넘던 지난해 여름에는 물가당국과 여론의 압박을 받았으나, 9월 이후 원ㆍ달러 환율이 하락하면서 한숨 돌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초 1,130원이던 원ㆍ달러 환율이 올해 초 1,060원대로 떨어지면서, ℓ당 휘발유 가격도 2,100원대에서 2,000원대로 하락했다.
일본 아베 정부의 무제한 금융완화에 따른 엔저(엔ㆍ달러 환율상승) 현상이 본격화하면서 최근 수출 대기업의 이해관계에 민감한 경제단체와 관련 연구소를 중심으로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 약화→ 수출 급감→ 경제 위축'의 악순환을 우려하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와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2000년대 이후 달라진 '한일 경쟁구도'를 반영하지 못한 논리이며, 서민경제 안정 측면에선 원화가치 상승을 일부 용인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우리나라 10대 주력 수출품목의 외견상 일본과의 수출경합도는 여전히 높아 보이지만, 자동차ㆍ기계를 제외하면 엔저의 영향권 밖에 놓여 있다는 게 산업연구원의 분석이다. 반도체ㆍLCDㆍ통신기기(휴대폰ㆍ스마트폰)는 수출가격이 세계시장의 수요에 따라 결정되며, 조선ㆍ화학ㆍ철강 등도 한일 간 주력 품목이 달라 환율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조선의 경우 한국은 LNG선과 해양플랜트 등 고부가가치 선박 비중이 크지만 일본은 일반 선박에 치중하고 있다. 신현수 연구위원은 "품질경쟁력 수준이 비슷하고 엔저의 가격 전이 효과가 용이한 자동차는 악영향이 우려되지만, 국내업체의 경쟁력 강화 노력과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효과를 감안하면 과거보다 영향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수출 물량이 감소하지 않더라도 원고에 따른 수출기업의 채산성 악화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는 국가경제 전반에서 보면 수입물가 하락이라는 긍정적 효과로 충분히 상쇄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회 경제산업조사실 원종현 입법조사관은 "대일 무역적자의 상당 부문이 가격탄력성이 낮은 일본제 부품 및 소재에서 발생하는 걸 감안하면, 관련 수입업체에겐 오히려 원가절감을 통해 수출 채산성을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원화는 장기적으로 강세를 나타낼 가능성이 큰 만큼, 수출경쟁력을 환율 정책에만 의존하는 대신 자생적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의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수출업체의 상대적 피해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원고의 혜택을 대다수 서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물가당국이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원유, 곡물, 수입소비재 등은 환율 하락에 따라 소비자 판매가격이 인하될 소지가 충분하다"며 "국제 곡물가격 상승 등을 이유로 지난해 출고가격을 올린 업체들에 대한 모니터링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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