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출신의 세계적 추리소설작가 애거서 크리스티가 작품 속 등장인물의 이름 때문에 2차대전 당시 스파이라는 의심을 받고 영국 국내 정보기관 MI5의 조사를 받았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4일 보도했다.
부부탐정 토미와 터펜스가 히틀러의 스파이를 찾아내는 내용을 담은 (1941년 출판)에는 부부의 친구로 지루한 성격의 블레츨리 소령이 등장한다. 이 블레츨리라는 이름이 영국 당국을 고민에 빠뜨렸다. 영국은 당시 블레츨리 파크로 불리는 시골마을에 독일군의 암호를 깨는 암호해독본부를 운영하고 있었다. 물론 극비였다. 그런데 크리스티가 독일과의 스파이전을 다룬 소설에 블레츨리라는 등장인물을 쓴 것이다. 더구나 크리스티는 블레츨리 본부의 암호해독가 딜리 녹스의 친구였고, 녹스는 독일의 난공불락 암호생성기계인 '에니그마'를 해독한 핵심 인물이었다.
MI5는 크리스티가 녹스에게서 블레츨리에 대해 듣고, (독일에 도움을 주기 위해) 악의적으로 그 이름을 쓴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녹스는 MI5 조사에서 "크리스티가 블레츨리 파크에 대해 알고 있을 리 없다"며 "직접 물어보겠다"고 협조했다. MI5는 유명 소설가를 직접 조사할 경우 언론에 보도될 것을 우려해 녹스에게 크리스티 조사를 맡겼다.
녹스가 크리스티를 초대해 차와 과자를 대접하면서 "왜 그 이름을 썼지?"라고 묻자, 크리스티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블레츨리? 이봐 친구, 내가 옥스퍼드에서 런던으로 가는 기차를 탔는데 갑자기 블레츨리에서 고장이 나서 시간을 허비했어, 나름 복수의 의미로 책에서 내가 가장 애정이 없는 인물의 이름으로 붙인 거야." MI5는 크리스티의 해명을 듣고 안도했다.
그러나 이 기사를 접한 영국 네티즌들은 "크리스티의 해명은 한마디도 못 믿겠다"는 반응이다. 추리와 스파이물을 통해 수없이 우연을 가장한 치밀한 구성을 선보였던 크리스티에 대한 애정의 의미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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