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측근 특별사면을 놓고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있다. "법원 판결을 무력화시키고 국민의 법 감정에도 거스른다"는 비판이 많다.
특별사면은 형을 선고 받은 사람 중 일부를 특별히 지정해 형 집행을 면제해주는 대통령의 특권이다. 헌법 제79조와 사면법에 근거한다. 법적으로 보장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어서 역대 정부도 이를 행사해왔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김영삼(9회) 김대중(8회) 노무현(8회) 이명박(7회) 정부까지 모두 32차례 단행됐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남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특별사면의 딜레마다. 특히 대통령 임기 말에는 정치적 보은 성격이 짙은데도 국민 화합이란 명분을 내세워 역대 어느 정권도 건너 뛴 적이 없다. 더욱이 사면 대상자는 정치적 고려에 의해 자의적으로 선정되는 탓에 고위층 비리사범이나 대기업 경영인, 주요 정치인 등이 포함됨으로써 형평성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를 감안해 2007년 12월 특별사면시 사면심사위원회 심사를 반드시 거치도록 사면법을 보완하기도 했으나, 정작 사면권 행사 기준ㆍ대상ㆍ한계 등은 빠져 있다. 이 때문에 현행 사면법은 있으나마나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인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위원장은 "사법권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사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권력형 부정부패, 반인륜적 범죄 등은 특별사면 대상에서 제외하고, 사면심사위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위원 다수를 시민사회에 개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은차원서 권력형 비리에 면죄부 대통령의 고유권한 강변은 어불성설"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불합리한 형벌 구제·사회통합사면제도의 본질과 동떨어져대상자 엄격 적용 왜곡 막아야
특별사면권은 형벌법규가 국민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정상을 제대로 참작하지 못하거나, 자의적인 사법권에 의해 불합리하게 형벌이 부과된 경우 정의의 관점에서 이를 시정함으로써 사회통합을 추구하는 것을 본질로 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말 특별사면은 사면권자와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측근의 권력형 비리에 대한 사법적 단죄를 무위로 돌리고 있다는 점에서 법치주의의 형식적 불합리성을 제거하고자 하는 사면제도의 본질에 반한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가 엄격한 법질서 확립을 기치로 삼아 미네르바 사건, 용산참사 사건 등 검찰권과 경찰권의 자의적 행사를 독려하여 왔음을 상기할 때 측근비리에 대한 사면은 법 집행권자가 법치주의에 관하여 주객이 전도된 이율배반적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법치헌정의 기초를 훼손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사면된 범죄인의 죄질이 매우 중하다는 점에서 이번 사면은 치명적인 하자가 있다. 대표적으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선거과정에서 인허가관련 알선을 매개로 부정을 저질러 유죄선고를 받았고, 이 비리자금이 대선자금으로 사용된 정황이 있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핵심요소라는 점에서 이러한 정황은 법적 정의의 보전은커녕 국가 기본질서를 정면으로 훼손하는 중죄인의 형 집행을 면제하는 것으로 사면권의 존재의의를 스스로 부정한 것이다.
이 같은 특별사면권의 남용을 근본적으로 제어하기 위한 대응방안은 두 가지 차원에서 검토될 수 있다. 우선은 대상을 제한하거나 절차를 강화하는 등 사면법을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 권력형 부정부패, 반인륜적 범죄 등의 경우 국민의 정의관념에 반할 가능성이 적고, 헌정질서의 근간을 훼손하는 범죄라는 점에서 특별사면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면심사위원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위원 다수를 시민사회에 개방하고 그 자격요건을 강화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시적 접근은 더 근원적인 인식의 전환이나 제도개선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그 실효성을 담보해낼 수 없다. 사면권 남용은 검찰권을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고 형사사법제도를 자의적으로 오용하는 정치사회문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공선법 등 특별형벌체계는 자유로워야 할 정치활동이나 정치자금의 유통을 형사범죄로 삼을 수 있도록 과도하게 통제함으로써 검찰권의 자의적 행사에 의해 정치지형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구조이다. 정상적 정치활동도 형사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력의 시녀가 된 검찰은 야당과 시민사회를 탄압하는 수단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검찰마저도 명백한 권력형 비리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측근들에 대한 사법적 단죄의 여지가 있다. 이처럼 정치화한 검찰을 통하여도 면죄될 수 없는 권력형 비리에 대한 단죄를 무력화시키는 수단이 바로 특별사면인 것이다. 더구나 특별사면이 정치화한 검찰의 정점에 있는 검찰총장이나 법무장관을 통해 상신된다는 점에서 정치검찰의 愍퓽岵?법 집행을 보완하는 장치가 특별사면임을 알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임기말 사면이 법과 원칙에 따라 대통령의 고유권한이 행사된 것이라는 청와대의 강변은 어불성설이다. 헌법정신에 저촉되는 권한을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또한 이 대통령이 자신의 민정수석 출신인 법무장관을 통해 자신의 분신들에 대한 사면을 임기 말에 단행하였다는 점에서 검찰권을 정치적 목적으로 오용하는 연장선에서 사면권을 보은의 목적으로 오용한 것임이 명백하다.
결국 정치검찰체계의 정점에 있는 법무장관이 주군의 사주에 의해 국민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특별사면의 절차적 정당성을 형식적으로 확보해준 것이 이번 특별사면절차의 본질이다. 여기에 헌법이 사면권을 부여한 원래의 목적은 온데 간데 없고 적나라한 정치권력의 무모함만이 남을 뿐이다. 결국 정치권력에 굴종하는 검찰에 대한 개혁, 정치화한 검찰의 정점에 있는 법무부의 개혁, 나아가 형사사법제도 전반에 걸쳐 자의적 법 집행의 여지를 높여주는 형벌을 통한 사회통제의 문화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미시적인 제도를 개선한다 한들 특별사면제도의 남용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법부 결정 무효화 시킬 정당성 필수 '정의·평등' 헌법가치 역행땐 제약 마땅"
● 김인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위원장
근대 이전엔 왕권 과시용 악용권력 분립과 법치주의에 반한대통령 권한 남용 민망할 지경
사면은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권한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마음대로 사면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과 사면이라는 제도 자체가 헌법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상 헌법의 제약을 받는다. 권력분립과 법치주의, 기본권 보장, 평등의 원리에 기반한 제약이다. 이런 면에서 사법부의 판결을 침해하지 않도록 사면권은 제한적으로, 그리고 형벌권의 남용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보조장치로 행사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측근을 봐주기 위한 사면은 특혜 사면으로서 헌법의 기본가치를 침해하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사면의 역사를 살펴보자. 사면은 원래 국왕의 권한이었다. 과거 사면은 국왕이 자신을 따르는 신하를 구해주거나, 범죄자들을 용서해주는 제도였다. 사면은 모든 법적인 절차가 끝난 다음 국왕이 행사하는 것이었다. 국왕은 사면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펴기도 하고 국왕의 우위를 과시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면은 법 위에 존재하는 제도로서 국왕의 최종, 최후의 권한, 신성불가침의 권한으로 인식되었다. 칸트나 베카리아, 벤덤과 같은 근대 계몽주의자들이 한 목소리로 사면에 반대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사면의 본질을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사면은 근대국가가 되어서도 없어지지 않았다. 입법자들은 이전 국왕에 대한 반역범죄를 무효화시키기 위해서, 가혹한 형벌을 완화하기 위해서 사면을 인정했다. 헌법은 정면으로 사면을 받아들였고 사면은 헌법질서 중의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사면은 헌법이 없었던 근대 이전과는 달리 헌법원칙에 따라 제약을 받았다. 사면을 제한하는 헌법의 주요원리는 권력분립, 법치주의, 국민의 기본권 보장, 평등권 보장 등이다.
헌법의 원리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 사면은 첫째, 사법부의 결정을 무효화시킬 정도의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권력분립과 법치주의 원칙에서 파생되는 결론이다. 사면은 사법부의 결정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국가의 의사는 하나만 존재할 뿐이다. 단일 불가분의 주권에서 파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법부를 통해 나타난 국가의 의사를 대통령이 바꾸면 주권을 왜곡하게 된다. 다만 예외적으로 사법부의 결정이 정의가 아니고 부정의인 경우, 주권을 왜곡하는 경우에 사면이 이루어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사법부가 무효인 악법으로 국민들을 처벌했음에도 제대로 재심이 되지 않는 경우, 대표적으로 독일 나치시대의 판결, 일본 군국주의 시대의 판결, 한국 유신시대의 긴급조치 판결 등의 경우에 사면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 국민의 행동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한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형벌은 범죄에 대한 처벌이고 제약이다. 사면은 이러한 형벌을 풀어 줄 만한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 범죄는 경미한데 처벌이 지나치게 가혹한 경우, 일상생활, 경제활동에 제약이 심한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사소한 집회 위반, 사소한 경제범죄 위반임에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는 등 어려움이 있는 경우이다.
셋째, 평등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현대 국가에서 평등은 가장 중요한 원칙이고 또 국민의 기본권이다. 동일한 범죄로 동일한 처벌을 받았는데 누구는 사면을 받고 누구는 사면을 받지 않는다면 그러한 사면은 존중 받을 수 없다. 헌법의 기본 원리를 위배했기 때문이다. 측근이나 친인척을 주 대상으로 하는 사면은 평등의 원칙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넷째, 보충성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사면은 국가의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지 중추적인 제도가 아니다. 역시 중심은 사법권이다. 따라서 사법권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때에만 예외적으로 사면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사면을 기대하고 수사와 재판을 경시하거나 로비를 하는 것은 국가의 기간 제도인 사법권을 우롱하는 것일 뿐이다.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마지막 사면은 위에서 본 현대 사면의 기본원칙을 지키기 못했다. 부정의를 바로 잡기 위한 정의로서의 기능도, 일반 국민의 자유를 신장시키는 기능도, 평등의 원칙도, 보충성의 원칙도 지키기 못했다. 엄단해야 할 부정부패 사범을 친인척, 측근이라는 이유로 사면했으니 사면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이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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