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개발원조(ODA)를 둘러싸고 담당 부처간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다. 유상원조를 점차 줄여 장기적으로 무상원조로 통합해야 한다는 외교통상부와 지속 가능한 도움을 위해서는 유상원조를 줄일 수 없다는 기획재정부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 이 와중에 결국 그 부담을 짊어져야 할 국민들에 대한 의견청취와 설득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4일 외교부 관계자는 "재정부가 ▲유상원조로 경제개발에 성공한 경험 전수 ▲수혜국 책임의식 고취 ▲재정 부담 경감 등을 유상원조의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 근거가 빈약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개발 성공경험이 일반화하기 어려운 것인데다, 유상원조인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의 경우 100원을 주면 13원을 돌려받는데 불과해 재정건전성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수혜국의 책임의식 역시 무상원조의 매칭펀드(무상원조 90%에 수혜국 정부 10% 출자)로 충분히 고취시킬 수 있다고 반박했다.
반면 EDCF를 주관하는 재정부는 선진국들이 수십년간 아프리카에 천문학적 돈을 무상원조로 쏟아 부었지만 여전히 최빈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주로 유상원조를 받은 아시아 국가들은 최빈국에서 벗어났다는 점을 내세운다. 특히 점점 대규모화하는 개도국 인프라 건설의 경우 유상원조와 준상업차관, 민관협력(PPP) 등이 어우러진 개발금융으로 자금을 조달해 지원하는 것이 원조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유상원조의 틀을 개발금융으로 바꿔 내실 있는 원조를 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외교부와 재정부는 대립하고 있지만 정작 국제사회는 현재 우리나라의 원조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는 지난달 30일 우리나라 원조정책을 평가하면서 ▲5년 동안 ODA 지출규모 3배 확대 ▲신속한 관련법 제정 통한 ODA 추진체계 정비 ▲국제적 개발 협력증진을 위한 노력 등으로 개발협력에 있어 우리나라의 국제적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양자ㆍ다자원조, 무상ㆍ유상원조간 적절한 균형"을 권고했다. 기존의 무상과 유상원조가 결합된 '한국형 ODA'를 유지 발전시킬 것을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 상승과 함께 해외원조 규모도 늘어나야 하지만, 부처간 주도권 다툼에 매몰돼 이에 대한 대국민 설득은 찾아보기 힘들다. 올해 처음 2조원을 돌파한 우리나라 ODA규모는 2015년에는 국민총소득(GNI)의 0.25%인 4조원 이상으로 확대된다. 올해 4만원인 국민 1인당 원조액이 2015년이면 8만원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한 국제개발협력 전문가는 "2017년 국내 고교무상교육에 필요한 예산이 매년 3조1,000억원인데, 만일 ODA를 중단한다면 그 시기를 2015년으로 당길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 복지ㆍ교육 예산 증가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해외 원조도 늘려야 한다면 그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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