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 16㎝가 넘는 폭설이 내린 4일 아침. CJ GLS의 경력 8년차 택배기사 이모(41)씨는 평소보다 30분 가량 이른 6시30분 택배 터미널에 도착했다. 집하장의 눈을 치우고 차량 점검을 위해서였다. 이씨가 이날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 배송해야 할 물량은 180상자. 평소보다 20%가 더 많았다. 낮에 기온이 높아져 눈은 녹았지만 골목길과 오르막길에서는 입구부터 차를 세우고 짐을 들고 뛰기를 수 십여차례. 이 씨는 "내일은 물량이 더 늘어나는 데다, 도로도 얼어버릴 가능성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택배·유통업계가 전례 없는 배송전쟁을 치르고 있다. 어느 때보다 설 연휴가 짧아 한꺼번에 물량이 몰린 데다, 기록적인 폭설마저 겹쳐 업체들마다 초비상이 걸렸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설 명절기간 택배 물량은 지난해보다 12% 증가한 역대 최대 물량으로 파악되고 있다. 짧은 연휴 탓에 직접 방문하는 대신 선물을 보내는 이들이 크게 증가한 탓이다. 현재 설 연휴전인 6일까지 각 택배업체들은 하루 최대 100만박스의 선물을 접수 받아 전달해야 하는 상황. 여기에 날씨까지 발목을 잡고 있어 택배 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한통운, CJ GLS, 한진 등 주요 업체들은 안전교육과 함께 택배 인원을 늘리며 배송 지연 사태를 막기 위한 총력전에 들어갔다. 택배기사들에게 고지대나 제설작업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이면도로나 주택가 등 상습 동결지역을 미리 숙지시키고 있다. 또 한진은 본사 임직원 200여명을, CJ GLS는 300명을 분류 작업은 물론이고 집배송, 운송장 등록업무 등 택배 현장지원에 추가 투입해 놓고 있다.
유통업체들도 노심초사하기는 마찬가지. 눈이 많이 오면 차량 운행속도가 떨어져 처리 물량(백화점 1일 차량 1대 기준)이 평균 45~50여건에서 30~35건으로 떨어진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3일 전체 물량의 4% 가량인 80여건의 배송이 하루 미뤄졌다. 때문에 백화점들도 배송인력과 차량을 10~30% 정도 늘렸다.
홈쇼핑의 경우는 더욱 분주하다. 설 선물과 일반 구매 물품이 겹치면서 택배사고가 빈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불황이다 보니 물건이 택배를 통해 전달되는 점을 악용하는 사례도 적잖이 나타나고 있다. 사과 등 과일의 경우 크기가 작다거나 멍이 들었다는 이유로 반품하고, 선물용 보석과 고가 카메라의 경우 물품이 없다고 되돌려 보냈지만 조사 결과 박스를 재포장한 흔적이 발견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GS샵은 고가 상품의 경우 전체 구성품이 누락되지 않았는지 전수검사를 진행하고, 물품에 따라 CCTV로 기록을 남기고 있다. 또 디지털카메라의 경우 상품을 출고 전 무게를 달아 구성품 누락을 방지하고 귀금속은 택배 상자 안쪽에 포장을 훼손하지 않고도 구성품 확인이 가능토록 별도 비닐 포장을 하고 있다.
일부 고객들의 배달원에 대한 경계심을 해소하기 위해 여성 배달원을 대거 채용하는 등'안심 배송' 전략을 마련한 업체들도 늘었다. 현대백화점은 여성배달원 수를 지난해 설보다 15% 늘리고, '한걸음 뒤로' 서비스를 통해 배송 시 배달원에게 현관문에서 1m가량 떨어져 대기토록 했다. 롯데백화점은 배달 직원의 60% 이상을 여성 인력으로 채웠다. 갤러리아백화점은 백화점과 배송기사가 이중으로 고객에 도착시간을 알리고 배송 시 2인1조로 움직이도록 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불경기라고 해도 설 연휴가 짧다 보니 배송물량이 더욱 몰리고 있어 빠르고 안전한 배송을 위해 유통, 택배업계가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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