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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들의 연극으로 배우는 구로공단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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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들의 연극으로 배우는 구로공단의 역사

입력
2013.02.04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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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잘 해보자고 한 건데, 공장장이 너무 우리를 막 대해요.", "야근 좀 그만 시켜요. 잠 좀 잡시다."

4일 오후 서울 구로구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 1970~80년대 '수출 산업의 역군'으로 불리면서도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저임금과 인권 침해의 희생양이 됐던 구로 공단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구로 지역 산업화의 역사를 조명하는 교육연극 '입사를 환영합니다'의 한 장면이다. 80년대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 역할을 맡아 직접 연극에 참여한 중학생들이 '사장과의 대화' 시간에 불만을 쏟아냈다.

교육연극은 관객들이 무대위에서 펼쳐지는 연극을 수동적으로 관람하는 대신, 직접 연극에 참여하면서 토론하는 방식의 연극이다. 구로문화재단과 교육극단 '올리브와 찐콩'이 제작한 이날 연극에는 서울 영림중 3학년 학생 64명이 참여했다. 5일에는 개웅중, 오류중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연이 열린다.

연극의 배경은 1985년 구로공단에 있는 가상의 섬유회사인 '정우실업'. 학생들이 직원으로 채용되면서 연극은 시작된다. 당시의 시간당 임금은 300원에 한달 월급은 7만원 수준. 학생들은 직접 근로계약서를 쓴 뒤 번호표를 받고, 작업용 앞치마를 두른 채 연극에 참여했다.

옷감을 자르고, 커다란 다리미로 옷을 다리는 동작을 체험한 학생들은 "일을 잘한다"는 공장장의 칭찬에 즐거워하고, 1만원의 상금이 걸린 장기자랑을 하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더 빨리 일해라", "작업 물량을 맞추려면 야근해야 한다"는 공장장의 다그침에 노동자 역을 맡은 학생들은 지쳐갔다.

툭하면 고장나는 기계, 덥고 환기 안되는 작업장, 여직원에게 추근대는 공장장 등 불합리한 작업환경을 접한 학생들은 연극 도중 일하던 노동자가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하자 급기야 '사장과의 대화'를 요구했다.

"회사가 살아야 직원이 산다"는 사장의 말에 학생들은 "경찰에 신고하겠다", "얼마나 일이 힘든지, 사장님도 체험해보라", "직원들에게 잘 해주면 사기도 높아지고, 더 잘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느냐"고 따졌다.

난상토론 끝에 학생들은 대표자를 구성해 협상을 하면 근로조건을 개선하겠다는 사장의 약속을 받아내고, 연극은 마무리됐다.

연극에 참여한 영림중 박윤아(16) 학생은 "구로공단의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그때 상황으로 돌아가니 당시 근로자들의 억울한 일을 풀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작업환경 등을 꼼꼼히 살펴볼 수 있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연극을 연출한 극단 '올리브와 찐콩'의 이영숙 대표는 "학생들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됐던 구로공단의 객관적 사실을 알려주고,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연극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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