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003년 2월 5일 오전 6시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회장이 어둠이 짙게 깔린 경기 하남시 창우리 언덕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맞으며 선친인 정주영 명예회장의 묘소 앞에 선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무거운 표정으로 절을 마치고 일어서는 정 회장의 검은 뿔테 안경 속으로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날은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숙원이었던 금강산 육로관광 사전답사가 이뤄진 날이었지만 정회장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대북 비밀송금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었다.
정회장은 짧은 참배를 마치고 행사장으로 향하는 승용차에 몸을 실었고, 같은 시간 강원 고성군 통일전망대 앞은 방북단과 환송 인파들, 그리고 국내외 취재진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인사말을 통해 "사업추진 과정에서 남북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여러 가지 미비한 점이 있었던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복잡한 심경을 내비친 정회장은 기념식을 마치고 북으로 향하는 대형버스에 올랐다.
오후 2시 30분, 사전답사단 87명을 실은 10대의 버스가 휴전선을 넘어 동해선 임시도로를 따라 북한 지역으로 접어들었다. 민간인들이 판문점을 거치지 않고 처음으로 남북을 오가는 관광도로가 뚫린 것이다. 1953년 휴전협정 체결 이후 50년 만의 일이었다.
비행기가 아닌 육로방북은 98년에 첫 물꼬가 열렸다. 북한지역 강원 통천이 고향이었던 정주영 당시 현대건설 회장이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에 힘입어 소 500마리를 트럭에 싣고 군사분계선을 넘음으로써 첫 발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역사적인 '소떼방북'을 통해 분단 이후 남북합의로 판문점을 지나 북으로 들어간 첫번째 민간인이 된 정 명예회장은 이후 금강산관광과 대북사업에 깊은 의지를 내비쳤다.
아버지를 가장 닮았다던 다섯째 정몽헌회장은 2000년 경영권을 두고 벌어진 현대그룹 형제들간의'왕자의 난'을 계기로 후계자에 올라 금강산 육로관광과 개성공단 개발 등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3년, 과거 남북정상회담과 금강산관광 등 대북 사업에 대한 대가로 5억달러의 불법자금을 북한에 송금한 사실이 드러나고, 검찰 수사와 함께 경영난까지 겹친 현실에 괴로워하던 그는 같은 해 8월 4일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 사옥 12층 회장실에서 유서를 남기고 투신함으로써 비운의 생을 마감했다.
정회장의 사망 후 부인 현정은씨가 현대그룹회장에 취임해 대북 사업에 대한 유지를 이었지만, 금강산 관광은 2008년 7월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에 의해 피격된 후 지금까지 전면 중단된 상태다.
머지않아 새 정부가 들어서는 만큼 하루빨리 남북관계의 긴장이 해소돼 금강산으로 향하는 휴전선이 다시 열렸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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