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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2월 5일]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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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2월 5일] '사과'

입력
2013.02.0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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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 무네요시는 식민지 조선 민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널리 알리고자 누구보다 애썼다. 그는 자신의 성품을 잘 드러내는 빼어난 글들을 남겼는데 그 중에 '사과'라는 아주 짧은 산문이 있다.

그는 이 산문에서 오래 전 동지사대학 여학생들을 인솔하고 조선으로 수학여행 갔을 때의 일을 회상하고 있다. 일행이 경주에서 석굴암과 신라의 고미술을 감상하고 대구행 기차를 탔을 때 기차 안에는 초라한 행색의 한 조선인 노인이 타고 있었다. 야나기는 이 노인의 모습을 눈에 보일 듯이 묘사한다. 관례대로 갓을 쓰고 턱에는 흰 수염이 바람에 흔들리고 손에는 긴 담뱃대를 들고 있었다. 그런데 차장이 차표검사를 하러 왔을 때 노인은 당황했다. 윗저고리 주머니, 허리에 찬 주머니에도 차표는 없었고, 떨어뜨린 줄 알고 좌석을 돌아봐도 차표는 보이지 않았다. 젊은 차장은 빨리 차표를 내놓으라고 독촉했으나 차표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가난한 농부였을 노인에게는 여분의 돈이 없었다. 노인은 여러 번 사정했지만 차장은 내리라고 퉁명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보기가 딱했던 야나기는 갑자기 생각나는 대로 학생들 한 사람 앞에 15전씩 갹출해서 노인의 차표 값으로 주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노인의 눈에는 눈물이 났다. 이윽고 기차가 다음 정거장에 도착했을 때 노인은 급히 허둥대며 차에서 내렸다. 몇 분이 지나 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정거장을 막 떠나려고 할 때 노인이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숨이 차서 허덕이며 차 안에 들어왔다. 그는 두루마기에 쌀 수 있는 데까지 많은 사과를 사가지고 야나기 일행에게 다가왔다. 노인은 좌석 사이에 사과를 쌓아놓았다. 그리고 몇 번이고 머리를 숙였다. 일행은 모두 눈시울을 적셨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 채 모두 일어서서 노인을 둘러쌌다. 대구역에서 손을 흔들며 작별한 것이 노인과의 마지막이었다. 야나기는 이후 사과를 볼 때마다 노인을 생각하고 이 세상에서 맛볼 수 있는 인간의 행복을 노인으로 해서 경험하게 된 것을 감사히 생각한다고 했다.

이것은 단순한 미담이 아니다. 그런 게 아니라 조선인이건 일본인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부자건, 삶의 우연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호의를 베풀고 또 상대방은 진심 어린 감사의 행동을 하는, 과거 전통사회 사람들이 흔히 했던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행동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 행동은 물질적 재화가 부족하고 늘 한계를 의식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전통사회의 사람들이 '삶의 한계' 속에서 발전시켜온 '삶의 예술'이자 지혜였고, 그 덕택에 사람들은 삶이 비참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인사청문회 대상이 된 인사들의 살아온 행적이 도마에 오르는 것을 보면서 내 머리 속에는 자꾸 이 촌로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배를 하는 사람들은 지배를 받는 사람들만큼 현명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그런데 이들이 주도한 근대 국가의 역사, 자본의 역사라는 것은 그런 시골 농부의 삶을 모욕하고 두루마기 가득 사과를 사 들고 오는 살아 있는 행동을 할 기회를 없애가는 과정이었다. 이제 자발적으로 서로 돕는 관계의 망이 사라진 상황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뿔뿔이 흩어져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 한편에서 국가는 자신이 모든 것을 도맡아 해결해줄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근대국가의 통치권은 많은 부분 국가의 조세징수권에서 비롯되고, 원활한 조세징수는 경제성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오늘날의 경제위기가 단순한 '불황'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 즉 성장이 멈춘 시대에 돌입한 징후라는 지적을 많은 진지한 경제학자들이 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어두운 종말에 대한 전망으로 겁주려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장이 멈춘 시대는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다.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바닥으로 내려가서 서로 엮이는 길밖에 없다. 서로 엮여서 저 농부와 같이 서로 돕고 도움 받는 상호부조의 전통을 다시 살리는 길뿐이다.

박경미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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