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에 출석하지 않아 벌금형으로 약식기소됐던 재벌가 2, 3세들이 법원 직권에 의해 정식 재판에 회부됐다.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법원은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검찰의 약식기소는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재벌가에 대해 솜방망이 구형을 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최근 재벌 총수들에게 잇달아 중형이 선고된 것과 맞물려 법원의 이번 판단이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은 4일 롯데그룹 신동빈(58) 회장, 현대백화점그룹 정지선(41) 회장, 신세계그룹 정용진(45) 부회장과 여동생인 정유경(41) 부사장 등 4명을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정 부회장 남매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이완형 판사가 이날 먼저 정식 재판 회부를 결정했고, 신 회장과 정 회장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18단독 이동식 판사가 뒤를 이었다. 두 판사는 사전 협의를 거친 뒤 정식 재판 회부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이들이 국정감사에 수 차례나 불출석한 것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어 사안이 중대하고, 검찰이 구형한 형량 또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이같이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검찰은 이들을 대형 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침해와 관련해 지난해 10월 열린 국회 국정감사와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은 혐의(국회에서의 증언ㆍ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각각 벌금 400만~7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국회에서의 증언ㆍ감정 등에 관한 법률은 증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을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 등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법원은 일반적으로 검찰이 약식기소한 사건에 대해 벌금액을 조정하는 선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할 경우 직권으로 정식 재판에 회부할 수 있다. 피고인이 무죄를 강하게 다투는 경우도 정식 재판 회부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정식 재판에 회부되면 출석 의무가 없는 약식 재판과 달리 법정에 최소 2차례 이상 출석해야 하며, 검찰도 법정에 나와 공소 유지를 해야 한다. 정식 재판에 회부되면 사건은 새로운 재판부에 재배당된다.
정 부회장 등은 약식기소 단계에서부터 이미 대형 로펌을 선임, 국정감사 기간 중 해외출장 기록 등을 제출하면서 무죄를 강하게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식 재판에 회부된 사건의 선고 형량이 반드시 약식기소 당시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것은 아니며, 경우에 따라서는 무죄가 선고될 수도 있다. 하지만 유ㆍ무죄를 떠나 법을 어긴 재벌가 2, 3세들을 정식으로 재판에 넘기지 않은 검찰은 '봐주기'를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검찰 관계자는 "법원이 판단한 사안에 대해 따로 할 말은 없다"면서도 "국감에 불출석했던 증인에 대한 과거 처벌 사례에 비춰 약식기소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